바둑10결의 네 번째, 기자쟁선(棄子爭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본선 8강전)
○·이세돌 9단 ●·천야오예 9단

제6보(65~72)=이세돌 9단은 약한 돌들을 교묘히 연결시켜 강한 흑을 우그러뜨리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65는 필연인데요, 이렇게 잇자 흑 모양이 둥그렇게 뭉쳤군요. 이런 비능률적인 모양을 두고 프로들은 ‘우그러졌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세돌은 흑의 집중포격에 갈대처럼 휘청거리면서도 날카로운 역습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소수의 유격전으로 적의 본진을 흔들긴 했으나 그건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단 66으로 잇습니다. 흑이 ‘참고도1’ 흑1로 바로 끊는 것은 8까지 흑이 오히려 곤란해집니다. 따라서 흑도 일단 67로 막아야 합니다.

 여기서 백이 A로 한번 더 버티는 것은 끊겨서 안 되겠지요. 따라서 백은 잘 후퇴해야 합니다. ‘참고도2’ 백1은 어떨까요. 흑2 넘을 때 3으로 이으면 백은 다 살았군요. 하지만 이세돌 9단은 그냥 68에 이었습니다. 69, 71로 석 점을 내주고 대신 선수를 잡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진실로 감탄했습니다. ‘참고도2’가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이지만 이세돌은 그걸 가볍게 뒤집었습니다. 이런 유연한 사고방식이야말로 바둑에선 묘수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덕목이지요. 기자쟁선(棄子爭先)은 돌을 버리고 선수를 취하라는 뜻으로 바둑10결의 네 번째 교훈입니다. 다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운데 이세돌 9단이 지금 그걸 보여줬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