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론자 아니냐 묻자…“고민해 봐야” 즉답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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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오후 원장으로 재직 중인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한국개발연구원에서 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부처 수장이 부총리로 격상되면서 자천타천으로 10명이 넘는 중량급 인사가 하마평에 올랐지만 모두 빗나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료 조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데다 보스 기질이 약해 리더십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7일 서울 홍릉 KDI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내내 조심스러웠다. “인선을 예상하지 않았고, 불과 며칠 전에 박근혜 당선인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으로 중산층을 복원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원론만 내놨다. “성장론자가 아니냐”는 질문엔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여러 정보를 고려해 추진돼야 하는 것이어서 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역점 추진 과제에 대해서도 “처음 말한 대로 후보자의 입장이라 좀 더 파악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전제한 뒤 “그간 KDI에서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 경제를 어떻게 빨리 회복시킬 수 있느냐’와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과 복지 수준을 어떻게 일신할 수 있느냐’에 역점을 두고 고민해 왔다”고 답했다. 관가에선 현 내정자가 강력한 소신을 펴기보다는 박 당선인 정책의 충실한 집행에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하는 관측이 많다.

 인사청문회 검증 과정과 관련해서는 “나 자신은 결핵성 골수염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아 방위로 복무했다. 아들은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했다”고 답했다. 서울 반포 아파트 증여세 탈루 의혹과 분당 파크뷰 아파트 입주 과정 의혹에 대해서는 모두 해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관료 경력은 화려하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경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때 맡은 경제정책국장이다. 이후 세무대학장을 지낸 뒤 2001년 관가를 떠났기 때문에 차관보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퇴임 후 오히려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을 거쳐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장을 지내면서 전문성을 넓혔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KDI 원장으로 4년간 재임했기 때문에 경제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어떤 정책방향을 취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끌어가야 할지 가장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이라고 전했다. 업무 스타일과 관련해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리더십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행시 14회로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보다 연배가 높거나 고시 기수가 높아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수석에 힘 있는 사람을 임명한 뒤 친권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강단이 없고 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부처 이해관계를 과감하게 조정하는 데 단점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이다.

김동호·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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