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10년] 내장재·매뉴얼 바꿨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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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구지하철 참사는 화재에 취약한 전동차 내장재와 역사 내부 구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대응 매뉴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전동차 내장판에 쓰인 불량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등이 타면서 순식간에 전동차를 불구덩이로 만들고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방화범이 전동차에 불을 붙인 지 3분도 안 돼 지하철 역사는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역사엔 화재 대비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다. 단전에 대비한 비상등은 켜지지 않았다. 야광 비상유도등도 없었다. 승강장 스플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고 연기를 뽑아내는 제연 시설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역무원들은 폐쇄회로TV(CCTV) 감시에 소홀했고 화재 경보를 무시했다. 관제사와 기관사는 큰 사고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안이하게 대처했다.

 참사 이후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종합안전개선대책을 세우고 465억원을 들여 차량·시설·전기통신·인적제도 등을 개선했다. 가장 문제가 된 전동차 내장재를 모두 불연재로 교체했다. 역사 시설도 개조하거나 성능을 향상시켰다. 승강장에 스프링클러를 확충했고 위로 통하는 계단 입구에 제연막을 설치해 연기가 대합실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화재 시 평소보다 40% 이상 많은 양의 매연을 빨아낼 수 있는 제연 시설을 갖췄다. 대피를 돕기 위해 야광 비상유도표시를 승강장 복도부터 지상까지 연결했다. 직원·시민을 대상으로 한 훈련도 강화했다. 일단 비상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분기별로 전 직원이 참가하는 훈련을 벌인다. 차량기지 세 곳에 안전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시민 교육을 강화했다.

 하지만 인력 시스템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사가 개선에 투입한 465억원 중 인적제도 개선 분야에 투입된 액수는 7억9000여만원으로 1.7%에 불과하다. 역사별 근무 인원이 사고 당시와 비슷한 3~4명밖에 없어 불이 크게 번질 경우 제대로 대피 시스템을 운영하기 힘들다. 이승용 노조위원장은 “공익근무요원 4~5명이 함께 일하기는 하지만 대피 유도 인력으로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민 대상 교육이 아동·여성에만 그치는 것도 문제다. 안전체험학습장은 방문 인원의 90% 이상이 유치원생이다. 시민 대상 교육도 오후 2시에 이뤄져 직장에 다니는 성인 남성은 교육의 기회가 거의 없다.

대구=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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