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역사를 바꾼 지진들|「스파르타」에서 「터키」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발광한 화가의 그림처럼 어지러운 폐허에서 「터키」의 농부는 분노에 찬 탄식을 했다. 『이 고장은 저주받은 곳인가….』「그리스」이래 지진의 진격파는 멀고 깊게 뻗었다. 그것은 시대 정신에 전환을 가져오고 정변을 초래하고 예술 분야에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기원전 464년 「스파르타」에 일어난 지진은 『서있는 집이라곤 다섯 채 뿐』일 정도의 격진이었다. 「알키다모스」왕은 재빨리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무장시켰다. 국왕의 예감대로 정적 「헤로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원군을 청하여「키몬」이 4천 정예병을 거느리고 「멧세니아」의 「이토메」요새에 당도했다. 「키몬」이 「스파르타」에 출정한 틈에 그의 정적 「페리클레스」는 「쿠데타」를 일으켜 「키몬」을 추방하고 말았다. 「스파르타」의 지진은 「아테네」의 정치적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이다.
1956년2월 중국(명)에 일어난 사상 최대의 지진은 사망 83만을 기록하고는 산서·합서·하남 일대를 민란의 위기로 몰았다. 「베스비오」화산의 폭발로 「폼페이」가 용암 속에 매몰 됐을 때 「유럽」천지는 그것을 화려를 극한 이 시의 환락에 내린 신의 「불호령」으로 알고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천지창조이래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 가장 컸던 것은 1755년6월7일 「포르투칼」의 「리스본」을 급습한 대지진이었다. 진파 12.5「미터」로 6만의 사망자를 낸 「리스본」의 지진은 18세기 「유럽」의 정신사를 전반과 후반으로 구분하는 표시가 되었다. 이것은 가위 지신「그놈」이 일으킨 사상 혁명이었다.
「리스본」의 비극은 신의 은총이 가득 찬 올바른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신앙에 회의를 일으키고 이른바 최선의 세계에 관한 계몽주의자들의 낙천적인 확신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볼테르」도 이 지진을 계기로 「라이프니쯔」류의 이성적인 낙천주의를 부정했고 「칸트」도 인간을 신이 창조한 궁극 목표라고 한 그때까지의 해석을 부인했다고 한다. 이 같이 「리스본」의 대지진은 세기의 전반과 후반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 여기서 시대 정신은 합리주의에서 비합리주의로, 섭리의 질서에서 파괴적인 혼돈으로 전환했다.
운명을 삼통일에 의해 지배하는 「코르네이유」 및 사시는 의 고전 비극은 운명을 눈앞의 무대 위에 도량시키는 「세익스피어」적 연극으로 바꿨다. 지진의 충격은 다시 「유럽」의 정원 양식에까지 미쳐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조정하는 「르노틀르」의 「프랑스」적 정원에서 유암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칸트」의 영국식 정원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베르사유」궁전의 정원은 「런던」교외 「큐」식물원에 총애를 뺏겼다. 「유럽」의 독서계에서는 밝은 남해의 자연을 그린「호머」열이 식고 어두운 북해의 자연을 그린 「오시앙」전설이 석권했다.
여섯 살 때 「리스본」지진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괴테」가 그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호머」의 노래로 시작하여 「오시앙」의 비가로 끝맺은 것은 「리스본」지진의 사상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리스본」지진을 개기로 달콤한 「로코코」의 유열과 이성 만능의 낙천주의에서 흉폭한 자연의 충동으로 시대가 전환하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20년 동안에 두 번이나 천재 지변을 당한 「터키」「아톨리아」지방의 「모슬렘」주민들이 파괴된 극장의 벽돌 짝 속에서 서로 껴안은 채 죽은 30쌍의 남녀의 시체를 발굴하면서도「알라」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이 「칸트」나 「볼테르」가 아니기 때문일까. <김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