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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경솔한 발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수감중인 혁신계의 특사 문제와 관련하여 혁신 정당의 법적 지위 및 활동 자유의 한계 등을 에워싸고 정계에 논쟁이 또 다시 벌어졌다. 길 공화당 사무 총장은 『좌파 혁신계는 공산주의자와 가까운 것이며 이들을 제외한 혁신계 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하고『이들은 반공 정신이 투철한 사람에게까지 변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이란 술어 자체를 없애야한다』고까지 말하여 크게 말썽을 일으켰다. 또 윤 신한당 총재는 『정부가 혁신계 인사를 석방하지 않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다. 좌익계 혁신 인사는 석방하고 우익계 혁신 인사는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말하여 이 역시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정계 중진으로 있는 양씨의 이와 같은 주장은 그 발언이 제아무리 정략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간단히 묵과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도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혁신계, 나아가서는 국민 일반의 정당 활동의 자유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요, 이미 석방되었거나 혹은 아직도 수감 중에 있는 혁신계 인사의 신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혁신계도 현행 헌법을 준수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정치 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한 보수계의 정치 활동과 마찬가지로 그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헌법 제7조3항은 『정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다만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대법원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혁신계 역시 민주적으로 정당을 조직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며 그 정당의 활동 내용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나는 것인지의 여부는 대법원만이 유권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권 투쟁에 있어서 경쟁자의 위치에 서 있는 보수정당은 비록 혁신계의 움직임이 그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뚜렷한 근거 없이 모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이 법적인 면에서나 정치 도의적인 면에서나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의 중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혁신계를 기피하는 나머지, 혁신계의 결집과 활동을 전면적으로 견제하려는 뜻의 말을 공언하였다는 것은, 정권 투쟁에 있어서의 「페어·플레이」정신을 망각한 것일뿐더러 국민의 정치적인 자유 그 자체를 위축시킬 저의를 함축한 것으로도 곡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혁신계 인사들의 신상 문제에 관하여 좌파는 「공산주의와 비슷하다」느니 「좌계는 석방해주고 우계인사만 가두어 두었다」느니 하는 발언은 용납키 어려운 발언이다. 5·16을 계기로 혁신계 인사가 되게 서리맞고 그중 많은 인사들이 교도소에 갇힌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모두 「특급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기소되었고 처벌되었으며, 우리가 알기로는 옥내외를 불문하고 지금 생존자 중 공산주의자로 기소 처단될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혁신계 인사의 특사 문제가 나오고 하는 것도 새로운 정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소급립법을 가지고 그들을 처벌하였지만 정치 질서가 안정된 오늘 이 시기에 까지 그들을 그냥 옥에 가두어 둔다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으며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는 반성이 없을 수 없다.
대저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린다는 것은 실로 생존권 그 자체를 빼앗기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혁신계로 몰리어 옥중 생활을 치르다 석방되었거나 또는 아직도 옥중 생활을 하고 있다하여 그중 어느 부류는 공산주의자와 비슷하다고 정계 지도자들이 함부로 올가미를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행동인 것이다.
우리 사회 혁신계로 자처하는 인사들이 반공의 한계를 엄격히 지켜,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주기를 당부함과 아울러 보수계가 사회 민주주의 내지 민주 사회 주의 세력을 애써 공산주의 세력과 동일시하려는 전세기적인 사고 방식을 지양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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