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한국엔 왜 명품 브랜드 없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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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31면

60대 주부 김영순(가명)씨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서울 회현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도착한 게 16일 오후 1시30분쯤. 100여 명의 다른 쇼핑객과 20여 분 줄을 선 끝에야 현장에 들어섰다. “최대 80% 폭탄 세일”이라며 떠들썩했던 수입 명품 세일 행사의 현장 말이다.

명품이 친숙해 보이는 이는 아니었다. 빗질 안 한 파마머리에 실용적인 패딩 점퍼. 하지만 손에는 작은 루이뷔통 가방이 들려 있었다. “평소에 가끔 명품 사시나봐요” 하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여유가 없으니까 큰마음 먹어야지 하나 살까 말까….” 요 몇 년 사이엔 명품 가방 살 엄두도 못 냈다고 했다. “가격이 너무 올랐잖아… 이런 데라도 오면 살 만한 게 있을까 해서. 그래도 우리는 아직 수입품이래야 알아주잖아요.”

같은 날 이 백화점 2층에선 국산 브랜드 ‘호미가’의 세일 행사도 열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가방으로 오인돼 유명세를 탔던 타조·악어 가죽 전문 브랜드다. 5분여를 행사장 앞에 서 있었지만 가격을 물어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 박근혜 가방이다” “이거 아니래잖아.” 수군거리며 지나가는 이들만 있었을 뿐이다. 구설수 덕에 매출이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지만 유럽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수입 브랜드 세일 행사장에만 손님이 몰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하철을 타고 와 긴 줄을 서서라도 싼 명품을 사고 싶어 하는 김씨를 네티즌들이 흔히 하듯 “된장녀”라 매도할 수 있을까. 행사장을 찾은 이의 대부분은 김씨와 사정이 비슷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여성, 딸 손을 잡고 온 70대 할머니…. 모두가 ‘나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경기가 나쁘고 소득이 줄어드니 언감생심 접어뒀던 마음을 세일 행사를 맞아 다시 꺼내놓은 것이다.

김씨에게 “왜 수입 명품만 사고 싶어 하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한국엔 명품으로 불리는 패션 브랜드가 없느냐”가 돼야 한다. 박 당선인의 가방으로 잘못 알려졌던 호미가는 “가방이 128만원이라니, 너무 비싸다”는 비난을 적지 않게 들었다. 판매 직원은 “특수 가죽을 써 일일이 손으로 만든 가방치고 비싸지 않다. 품질은 유럽 명품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유럽 브랜드가 붙었으면 세 배 넘는 가격이라도 팔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가방이 비싼 건 디자인과 품질,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가죽 원가와 인건비만 따져가며 “너무 비싸다”고 손가락질해선 국내에서 명품 가방이 나오지 못한다. 경기가 나쁜 요즈음은 명품을 꿈꾸는 국산 브랜드에는 절호의 기회다. 김씨처럼 지갑 얇은 소비자를 품질과 디자인으로 공략하면 수입 명품 매출을 제치지 말란 법 없다. 수입 명품에는 열광하면서 국산 브랜드에는 원가를 따지는 이중적 잣대만 걷어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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