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용변 맘대로 못 본 20여 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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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서초구 이수초등학교 3층 여자화장실. 교무실이 있는 본관과 영어학습실이 있는 신관을 잇는 통로에 있어 학생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쉬는 시간마다 이곳을 지나 다닌다. 1990년 건물 두 동을 연결하면서 화장실이 중간 연결 통로에 위치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상선 기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수초등학교에 다니는 이모(12)양은 학교 화장실에서 맘놓고 용변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남학생들이 여자화장실 내부를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1990년 건물 두 동을 기역(ㄱ)자 형태로 연결하는 공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건물 끝 부분에 있던 화장실이 연결통로에 자리 잡게 됐다. 학생들은 교무실에 가거나 영어·특별활동 수업을 위해 양 건물을 오갈 때 화장실을 통해 이동해 왔다. 1·4층은 남학생용, 2·3층은 여학생용 화장실이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거쳐 간다.

 지난 1일 이 학교를 찾았더니 남학생도 자유롭게 용변을 보기 어려운 구조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 양 옆으로 소변·대변 용기가 배치돼 있어 용변을 보는 학생과 이동하는 학생의 몸이 부딪히기 일쑤였다. 김모(11)군은 “쉬는 시간에는 도저히 대변을 볼 수 없어 수업 중 화장실을 가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 학교에 자녀 세 명을 보내는 이경애(39)씨는 “화장실을 이렇게 방치해 둔 교육 관계자들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20여 년 전 공사가 잘못돼 고쳐야 했지만 예산이 없어 손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초 역시 남녀 화장실의 입구가 분리돼 있지 않아 여학생이 남자화장실을 거쳐 가야 하는 구조인데도 고치지 못해 왔다. 1983년 개교한 이후 98년에 한 차례 보수공사를 한 게 고작이어서 오래된 화장실 문은 뒤틀려 잘 닫히지 않는 곳이 있다. 학교 관계자는 “건물이 낡아 단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화장실 수도가 얼기도 했다”고 말했다.

 낡고 지저분한 화장실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볼일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교육 관련 예산이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시설 투자에 제때 쓰이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이수초와 화양초는 다행히 올해 시설 개선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가 고친 지 20년이 넘은 초·중·고 64곳의 화장실을 올해 리모델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화장실 시설 개선 예산 115억원을 투입한다.

 이번에 리모델링 대상에 포함된 학교에서는 그동안 학생들의 고통이 계속돼 왔다. 송파구 한 여고 관계자는 “양변기가 아니라 쪼그려 앉아서 이용해야 하는 형태가 남아 있어 학생들이 불편해했다”고 말했다. 강북구 화계중 김종현 교장은 “여학생 화장실도 양변기 설치율이 30% 정도여서 일부 학생이 교사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며 “이제라도 예산 지원이 돼 안락한 화장실을 제공하게 돼 다행”이라고 반겼다. 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학생은 위생 때문에 양변기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미국 등에서는 학교는 물론이고 쇼핑몰 등 공공화장실에 1회용 종이 양변기 덮개를 비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서울시는 이 밖에도 올해 42억원을 들여 낡은 책걸상 9만5000여 개를 교체한다. 과거보다 학생들의 키가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확대된 무상급식에는 1186억원이 배정됐다. 무상급식 대상자는 지난해보다 8만3000명 늘어난 67만 명이다. 재료비를 9.6% 인상해 급식 단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글=유성운·조한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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