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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선수 집단이탈사건|파문과 교훈|그들에게 할말이 없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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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태릉합숙훈련소를 전원 집단 이탈하여 체육계 전대미문의 불상사를 일으킨 끝에 보기 드문 제재를 받은 「레슬링」 대표선수들에 대한 체육계 일반의 여론은 『처벌은 마땅하나 구제할 수 있는 길도…』하는 아쉬움에 집약된다.
이는 벌어진 사태자체는 응당히 처벌되어야 하나 조사위원단을 구성하여 사흘동안이나 철야하다시피 한 사태수습이 너무나 집행부에는 부드러웠고 선수들에게는 가혹하였다는 여론이 지배적인데다 이들 선수들에게는 그들대로의 할 말이 있었고 거시적으로 이들의 활약에 기대하는 바 컸기 때문이다.
◇쌓이고 쌓인 불신
문제가 된 현 「코칭·스탭」이 훈련단을 맡기 전까지 「레슬링」 선수단의 훈련생활은 전 훈련단의 모범이었고 「코치」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낸다는 말로 체육회 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들을 칭찬해왔다.
그러나 6월에 있은 세계선수권대회를 고비로 「레슬링」 선수단은 차츰 협회와 「코칭·스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선발전을 치르고도 돈이 없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보낼 수 없다는 협회 측 입장을 이해했으나 선수들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돈을 마련할 때 도와 주기는 커녕 수수방관했고 심지어는 방해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 한가지 예로 여권수속을 처음 하는 선수가 『외무부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느 임원의 대답이 『서울 안에 있겠지』하는 것이었고 돈을 마련하다 훈련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매질이 일쑤였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협회의 간부는 한사람도 이들의 훈련을 돌봐주지 않았으며 모 간부는 자기가 못 가는 것에 반발했는지 부산출장을 떠나버려 체육회에의 여비보조요청서류에 결재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선수들이 세게선수권대회에 출전, 장창선 선수가 금「메달」을 안고 개선하자 협회임원들의 태도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만큼 환영일변도였다.
◇신 선수 구타사건
사건이 일어난 4일은 과학자 저사 박사가 훈련장에 오던 날이라 「코치」들의 명령은 어느 때보다 무서웠고 신동의 선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그런데 훈련이 다 끝나고 보조운동을 할 때 신 선수가 『변소에 가겠다』고 했더니 이중호 「코치」가 나무랐다고 한다. 이때 신 선수가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돌아서며 「타월」을 내던지니까 이 「코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뺨을 세 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이 구타는 곧 신 선수의 사과로 일단락 되었으나 합숙소에 돌아온 12명의 선수단은 울면서 회합을 연 끝에 모두 선수생활에서 은퇴할 것을 전제하고 후배 선수들의 인간적인 대우와 「코치」 및 협회임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뜻에서 집단으로 숙소를 떠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이들은 그 길로 시내에 들어와 4백원씩 받은 훈련비로 청량리의 조일여관에 투숙, 결의문을 작성하고 다음날 장창선 선수가 모교인 동국대에서 세계재패기념물로 준 금반지를 맡겨 돈 2천원을 마련, 결의문을 「프린트」하여 협회와 체육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는 협회의 제명 및 자격정지처분이란 징계로 응수되었고 협회의 각개 격파로 장창선 선수는 인처으로 납치되다시피 했으며 3명의 선수는 훈련단에 돌아감으로써 현재 8명만이 그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배후 조종자 없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체육계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파벌싸움의 부산물이라 보았던 것같다.
그러나 「방콕」에의 길이 확 트인 이들의 「방콕」대회를 포기하고, 나아가 선수생활에서 떠날 것을 각오했다는 비장한 결심으로 봐서 어느 조정자의 말을 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보다는 협회와 「코칭·스탭」에 대한 불만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스파르타식 훈련
또한 그들은 일본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예로 들면서 현 「코칭·스탭」의 훈련이 「스파르타」식의 미명을 뒤집어쓴 전근대적인 방법이라 말한다. 주관이 서있고 목적의식이 있는 준엄한 훈련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나 현 「코칭·스탭」에서는 이런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레슬링」 협회가 이들에게 일벌백계주의로 임하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겠으나 『왜 선수들이 은퇴를 각오하고까지 물의를 일으켰나』하는 문제는 되씹어 볼만하며 덮어놓고 선수들을 매질, 간부간에 반목을 일삼아 이들의 사기를 꺾고 명예욕과 자기위치만을 고수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병폐는 차제에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윤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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