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문화사전' 편찬한 박성학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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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순수함이 프로페셔널의 노련함보다 나을 때가 있다. 투박하지만 뜨거운 아마추어 정신으로 정교하지만 꾀를 피우기 쉬운 프로페셔널의 관성을 극복할 수 있다. 『세계영화 문화사전』(집문당刊) 을 낸 박성학(46) 씨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일단 정보량이 대단하다. 웬만한 국어사전 크기(4.6배판 1천2백여쪽) 에 2천9백여 항목을 풀어냈다. '감독사전''용어사전' 등에 집중된, 그러면서도 그 종수가 그리 많지 않은 국내 영화사전 출판 현황을 감안할 때 '작은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박씨의 책은 사전이라는 특성 탓에 어떤 일관된 시각을 갖고 영화문화를 분석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이론.기술.산업.역사.문화적 측면을 상세히 설명하려 한 노고는 분명 평가할 만하다. 영화단체나 연구소 같은 기관에서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할 일을 개인 혼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8년간 하루 평균 10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열광적 아마추어리즘의 성과물로 봐주세요. 낙제점만 받지 말자는 마음으로 매달렸습니다. 요즘 영화잡지들이 늘어나면서 최신 정보는 넘쳐나지만 옛일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영화도 역사를 모르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 까닭인지 그의 사전엔 독특한 항목이 많다. 촬영.편집기법,영화장비, 영화사조 등에 관한 전문용어 외에 기독교.공룡.자살.권투.매춘 등을 다룬 영화를 정리하거나, 성묘사의 역사, 독립영화의 역사 등을 꼼꼼하게 훑고 있다.

"처음에는 제 공부를 위해 시작했어요. 그런데 외환위기로 생업을 잃으면서 본격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동안 참아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박씨가 했던 일은 연예산업 컨설팅. 미국 진출에 관심이 컸던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영화 제작.극장 설립 등을 상의해 주고 또 로스앤젤레스에선 특수효과 장비를 임대해주는 일도 했으나 외환위기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손을 떼자 일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최근 한국영화가 날로 성장하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달려들었다간 백전백패할 게 분명합니다. 할리우드의 계약관행이나 산업구조 등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이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죠."

박씨는 이런 점을 감안, 이번 사전에서 할리우드에 관한 항목을 최대한 많이 실었다고 말했다. 각종 신문.잡지.인터넷을 뒤지면서 최신 정보를 모았다고 했다. "할리우드는 극단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돈을 찍어내는 곳이죠.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앞으로 2, 3편격인 『세계영화 인물사전』『세계영화 작품사전』도 펴낼 계획. 2천2백여명을 다룰 2편은 내년 3월께 나오며, 3천여편을 소화할 3편은 70% 정도 집필을 끝냈다고 한다. 1970년대 격변하는 할리우드를 조명한 『할리우드 문화혁명』(피터 비스킨드 지음) 도 연말께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다른 뜻은 없어요. 단지 우리 영화계의 기초를 다지자는 생각밖에는요. 영화도 문화인 만큼 기본 정보의 수집.정리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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