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작품상 숨겨야 장사가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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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처럼 잘 나가는 한국 영화가 있는가 하면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비''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잘 못나가서 이른바 '살리자'운동의 도움을 받는 영화도 있다.

각 영화의 앞 글자를 따 '와.라.나.고'라고 통칭되는 이 작품들은 우여곡절 끝에 서울과 분당의 한 극장에서 재상영되고 있으니 흥행엔 실패해도 관심은 끈 셈이다.

그러나 이들 외에 극장가의 뒷켠에서 악전고투하는 영화들이 있다. 이른바 작가주의 외화들이다. 작품성은 있으나 흥행성이 뒤진다는 이유로 이 영화들은 치열한 배급 싸움에 밀리고, 한국 영화 돌풍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지난달 개봉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북경자전거'는 서울에서 3천6백명의 관객을 동원해 1주일만에 간판을 내렸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아메로스 페로스'도 단관 개봉해 2천명 동원이란 초라한 성적을 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스트레이트 스토리'나 에드 해리스 주연의 '폴락'등의 성적도 비참할 정도다. 그나마 이 영화들은 한 두개 극장이라도 잡은 것이 다행이다.

한 수입사 대표는 "외화 시장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초토화 됐다. 사놓은 영화도 풀 수가 없다. 좋은 영화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보려하질 않으니…"라고 푸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 연말에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반지의 제왕''화산고'등 화제작에 밀려 작가주의 외화를 거의 볼 수가 없을 전망이다.

다만 유일하게 올해 선댄스 영화제 대상작 '유 캔 카운트 온 미'(14일 개봉) 가 극장에 걸린다. 그런데 그 개봉 스토리를 들으면 더욱 기가 막힌다. 10월 개봉하려다 극장이 안잡혀 늦어진 이 영화의 수입사는 궁여지책을 냈다.

이 영화의 신문 광고에 선댄스 대상작이란 카피를 빼고 대신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문구를 넣은 것. 이 회사 관계자는 "작품성 있다고 하면 복잡한 영화로 생각하고 관객이 안들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게 지금 작품성 있는 외화들이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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