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두의 1318 따라잡기] 비판적 사고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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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시험을 보면 응시자의 창의적 사고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천만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똑같은 문제를 획일적으로 제시하고 제한된 분량의 답으로 창의력을 시험할 수 있다니! 그것도 길어야 1백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내게 논술이란 지식의 암기력과 사고의 순발력을 견주는 시험일 뿐이다(물론 약간의 논리적 표현력 테스트도 되겠지) .

창의적 사고력을 정녕 가늠해 보려면 무엇보다 주제 설정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글을 읽고 생각할 거리, 즉 논의할 만한 명제들을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관계 분야의 의제(agenda) 를 설정해 논의와 관심을 이끌고 키우는 여론주도층의 능력도 결국 주제 설정 능력이지 않은가. 또한 아무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또는 작은 문제라고 무시하고 지나칠 때 그것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문제 제기 능력도 결국은 같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특정한 주제와 의제,문제들을 찾아내자. 이러한 독서방법은 주어진 글을 단지 이해하는 수준을 벗어나 그 이상의 차원에서 대상과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힘, 즉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게 해 준다.

이때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게 필수적이다. 글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을 찾으려고 하는 데, 이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글을 읽으면서 '과연 그러한가?'라며 질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들은 결국 가치와 사실,방안 차원에 걸쳐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좀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확실히 사실로 판명된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까?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며 읽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까치글방) 와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지식산업사) 를 권하고 싶다. 쉽게 이해할 만한 책들은 분명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이 어떤 식으로 질문을 던져가고 있는가 '줄을 치다 보면 문득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

(문제제기 연습:"이런 식의 신비적 표현은 조언으로서 역시 문제가 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 카페』(크리스토퍼 필립스, 김영사) 는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이다.

국문학자인 조동일 교수는 최근 대입제도 개선안을 다룬 『발상의 전환에서 창조의 결실까지』(인간과자연사) 를 출간했다. 논술 시험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그분의 판단엔 동의하지만 심층면접을 대안으로 내놓은 데 대해선 사뭇 신중해진다. 왜냐고?

지금 고3 교무실에서는 대형입시학원에서 내놓은 지원.배치표가 대입지도의 유일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근거가 부실한 자료지만 전국에서 모두 참고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교육현장은 허상이 현실을 좌우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대안은 자칫 공허할 수 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한가?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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