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본 '청마의 삶과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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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과 가면과 간교와/무고하게 앗긴 인간 원가(原價) 를 돌이키고자 노리어/불법의 법(法) 과 불의의 의(義) 로 쌓아올린 백척 장벽 위/한 발을 걸쳐 넘어 올라서는/반들반들 눈망울 반짝이는 젊은 살인 강도 탈옥수 강오원(姜五元) !"

1958년 살인 강도 강오원이 대구 형무소를 탈옥하다 들켜 담장 위에서 자결하고 만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청마 유치환(柳致環.1908~1967) 은 위와 같이 끝나는 시 '강오원'을 발표,형무소 담장 위에서 밖의 '자유'를 바라보는 순간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빌려 자유당 정권에 대한 저항과 함께 인간 실존의 모습을 그렸다.

『청마풍경』은 역사와 철학, 동서양의 미술과 음악 등 모든 예술에 대한 저자의 감식안으로 청마의 시와 삶을 해부하고 있는 '청마 평전'이면서도 뛰어난 예술적 산문집으로 읽힌다.

57년 시단에 나온 허만하(許萬夏.79) 씨는 첫 시집 『해조』 이후 30년 만인 99년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내놓으며 "인간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위해 끝끝내 지켜야내야 할 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강오원의 시체를 법적으로 부검한 이가 바로 해부병리학 전문의사인 허씨였다. 그 바로 뒤 선술집에서 청마와 막걸리 사발을 나눴던 허씨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손은 아무의 손도 닿지 않았던 강오원의 체강(體腔) 속을 최초의 빛과 함께 더듬었던 손이었고, 청마의 손은 강오원은 죽지 않았다는 역설을 주장했던 펜을 잡았던 손이었다.(중략) 강오원의 사인(死因) 을 밝히는 과학적 인식의 상징으로서의 나의 손과 강오원의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투사하는 청마의 손."

시인이 된 후에도 허씨는 지난 40여년간 끊임없이 시체를 부검하고 병리학을 가르쳐야 했다. 프랑스의 바슐라르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며 철학의 논리가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몽상의 시학'을 펼쳤다.

살인범 강오원의 심장을 꺼내 저울이 아니라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 헤아릴 수 없는 우주적.실존적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허씨의 이번 산문집은 청마 시의 심장을 들여다본 '청마시 해부의 시학'이면서 바슐라르 시학의 깊이와 높이를 견지하면서 더 인간적으로 읽힐 수 있다.

"나는 역사란 말에서 마성(魔性) 을 느낀다. 그 안에 들어가면 사람은 잠적해 버린다. 한 목숨이 그 생애에 가지고 있던 일체의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말하며 허씨는 청마 시의 진실,우리 삶의 진실을 전한다.

"원원사(遠願寺) !원원사!/그 무슨 간곡하고 아득한 소망이었기/이토록 애닯게도 이름 들려 남음이랴."('원원사지'중)

경주의 원원사지를 답사하며 허씨는 청마의 시에서 청마의 한 여성에 대한 그리움이 시공을 넘어 아득히 실존적 차원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에서는 시대적 저항으로도 읽힌 이 시를 만주의 언 벌판에 어린 아들을 묻고온 청마의 개인적 회한으로 읽는다.

이 산문집은 때문에 역사나 당위나 논리적 그물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것 자체로 돌려놓는 현상학, 즉 '청마시의 현상학''예술의 현상학', 나아가 '삶의 현상학'으로 깊이 있게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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