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성공한 삶 베토벤은 왜 결혼 안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1827년 베토벤의 죽음으로 오스트리아 빈에는 수천 명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음악가로서 보기 드물게 당대에 적지 않은 재산을 모아 물질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베토벤의 유산을 두고 그의 동생이 유산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베토벤의 오랜 친구이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는 ‘불멸의 연인에게 모든 유산을 물려준다’는 베토벤의 유언장을 내밀며 베토벤이 생전에 관계를 가졌던 여인들을 하나하나 찾아 다니며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추적한다.

1995년에 개봉된 영화 ‘불멸의 연인(사진)’은 이렇게 시작해 쉰들러가 베토벤의 옛 사랑이었던 줄리에타 백작부인과 동생의 부인인 조안나 등을 찾아 다니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영화에서는 불멸의 연인이 조안나인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조안나의 남편인 베토벤의 동생이 죽자 그 부인인 조안나로부터 조카인 칼을 데려와 자신처럼 음악가로 키우려 했으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조안나에게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토대로 영화는 조안나가 베토벤의 아들인 칼을 임신한 상태로 그의 동생과 결혼했다는 그럴듯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신은 베토벤의 귀를 멀게 했고, 그녀를 선물했다.’ 2007년에 개봉된 영화 ‘카핑 베토벤’의 팜플릿에 수록된 카피다.

‘불멸의 연인’이 베토벤의 사후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반해 ‘카핑 베토벤’은 그의 말년을 그리고 있다. 청각을 잃은 베토벤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의 발표를 앞두고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휘갈겨 놓은 악보를 연주용으로 카피해야 할 사람이 병이 들어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차에 추천을 받아 나타난 안나.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안나에게 베토벤과 같은 거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그러나 안나를 바라보는 베토벤의 시선은 냉담하기 짝이 없다. 여성을 집안살림이나 하고 아이나 돌보는 존재로 알고 음악을 매개로 하는 친구나 동지로 생각할 수 없었던 18세기. 베토벤이 음악적으로 그저 한참 아래로 생각했던 안나가 베토벤이 그린 악보에서 잘못된 음을 바로잡는 순간 그는 안나를 음악적 동지로 받아들인다. 드디어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는 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가운데 숨어서 지휘하는 안나를 바라보며 지휘를 시작하는데 이 또한 실제로는 교향곡 9번의 초연 지휘자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단지 영화적 상상력일 뿐이다.

이 영화들을 통해 베토벤의 실제 전기를 보려고 한다면 욕심일 뿐 베토벤과 그의 주변에 머물렀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 두 영화를 통해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들을 배경으로 들을 수 있음에 만족해야 한다. 5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인생을 그것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던 베토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어쩌면 앞으로도 더 많은 베토벤 관련 영화의 제작을 부추길지도 모른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http://cafe.daum.net/the Classic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