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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소설도 맛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전화에서 흘러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얼핏 듣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곧 기억의 갈피를 젖히고 음성의 주인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중)

국내외 명작 소설들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EBS-FM(104.5㎒) 의 '라디오 소설'(월~토요일 오후 1시40분,재방 오후 5시40분) 이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방송을 시작한 이래 고정 팬 층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드라마 형식을 빌었지만 원작이 거의 그대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일반 드라마와는 다르다. 대사화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원작을 살려주는 성우들의 내레이션 위주로 진행된다.

이협희 PD는 "문학의 위기,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상황에서 소설을 읽는 매력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호흡을 느리게 가져가 청취자들이 상상하며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의지가 이런 만큼 작품 선정 기준이 꽤 까다롭다. 일단 검증을 받은 명작이어야 한다. 또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는 대하소설은 가급적 제외하고, 심리 묘사나 문체가 뛰어난 중.단편을 주로 고른다.

지금까지 50여 편이 방송됐는데,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빈처』,오영수의 『갯마을』 등 고전에서부터 김주영의 『홍어』,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임철우의 『사평역』,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등 최근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외국 작품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전파를 탔다.

이번 달에는 세계 명작의 진수를 맛볼 기회가 마련됐다. 오는 7일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체홉.톨스토이 등 대문호들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24일에는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성탄 분위기를 돋군다. 연말에는 겨울밤에 어울리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10회에 걸쳐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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