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조 야근 싫다 해 날아간 일자리 1000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야간 근무 강요하는 교대 근무 반대한다.”

 5일 전북 완주군의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트럭·버스 등을 만드는 이 공장 앞에는 이런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공장 안은 부품을 실은 지게차가 바삐 오갔고, 기계음은 요란했다. 그러나 근로자 중 일부는 ‘트럭부 똘똘 뭉쳐 상시 주간 유지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현대차 전주지원실 오제도 이사는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지난해 4월 칠레를 방문했을 당시 충격이 떠오른다고 한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판매점 쇼룸에 전시된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차가 오지 않으니 전시용 차량까지 다 판 것이다. 그는 “생산 설비가 모자라서 트럭을 만들 수 없으면 모르겠지만, 전주공장은 연간 1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데 5만~6만 대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달부터라도 사람을 더 뽑아 교대 근무를 하면 생산량을 8만 대까지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엔저’로 일본 승용차가 약진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 점유율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트럭은 예외적으로 엔저에도 계속 주문이 몰리는 부문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때에 야근은 안 하겠다는 노조 때문에 일자리 1000개가 날아갈 판이다. 현대차는 교대 없이 주간 근무(오전 8시~오후 6시50분, 연장 근무 포함)만 하고 있는 전주공장의 근무 형태를 바꾸려 하고 있다. 오전 6시40분~오후 3시20분, 오후 3시20분~다음 날 오전 1시10분으로 근무시간을 나눠 교대하는 방식이다. 이미 울산공장 등 나머지 현대차 공장에서 시행 중이거나 곧 시행할 근무 형태다. 전주공장에서도 버스 부문은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근무 방식을 2교대로 바꾸면, 회사는 교대 인원 충원을 위해 전주공장에 1000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일자리 4000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넉 달째 제자리걸음이다. 그동안 6차례의 노사 협의는 모두 결론 없이 끝났다. 장종기 노조 기획실장은 “교대제를 할 경우 근무 여건이 나빠지고 임금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전주공장 내 버스 부문의 과거 사례도 반대 이유다.

버스 부문은 2007년 4월 2교대 근무를 실시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주문량이 줄고, 잔업이 없어지면서 임금이 줄었다. 장 실장은 “우리도 고용 창출을 막지 않는다”며 “현재 근무 방식을 유지하면서 인원을 늘리는 방안을 찾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 오 이사는 “현재 근무 형태로는 작업 라인에 사람을 더 넣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17년차 직원을 기준으로 2교대를 하면 월 46만원씩 임금이 오른다”고 말했다.

사측은 교대제가 도입되면 현재의 시급제를 안정적인 월급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사측은 또 금융위기로 일감은 줄었지만 버스 부문에서 사람을 줄이지는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사 합의가 안 되면서 허공에 날린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지난해 주문이 들어왔는데 납기를 맞출 수가 없어 포기한 주문만 2만3000대에 달한다.

지금도 차종에 따라 최대 10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넘길 수 있다. 현대 트럭 인기가 높은 알제리에선 이 바람에 일본 이스즈에 계약 물량을 뺏기기도 했다.

한때 50%였던 현대 트럭의 알제리 시장 점유율은 최근 20%로 떨어졌다. 지난해 10월엔 공급 지연으로 쿠웨이트에 180만 달러(약 20억원)를 보상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주공장의 생산량이 세계 11위에서 15위로 밀린 상태”라며 “그 사이 후발주자였던 중국 업체가 현대차를 추월했다”고 말했다.

김영훈.이가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