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희의 노래누리] 뮤지션이 되는 두갈래 길

중앙일보

입력

B양에게.

안녕하세요. 오래전에 e-메일을 받고도 답장이 늦어 미안합니다. 비슷한 e-메일이 많아 아예 공개 답장을 보내는 점도 양해해 주세요!

대중음악 작곡자.프로듀서.뮤지션이 되고 싶다고요.좋은 꿈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건 해볼 만한 일이지요. 잘만하면 부와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일천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유명 작곡가.프로듀서이자 가수가 될 수 있는 길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끼가 있어야죠.'아니 저런 얼굴도 TV에 나오네'라는 놀림은 가볍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춤도 잘 추면 좋겠지요.

가까운 친인척이 장관도 하는 좋은 집안에 학교도 유명 대학을 다녔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대학원까지 진학하면 화제가 되겠지요. 전공은 음악이 아니라 정치학 같은 게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게 먹히거든요.

자, 여기까지 됐습니까.이제 본격적으로 음악을 준비해야죠. 우선 유명 작곡가를 찾아가세요.6개월이든 1년이든 설겆이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작곡과 '음악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겁니다.

이제 곡을 줘야죠. 미모의 신인급 여가수에게 강한 성적인 코드가 담겨있는 노래를 주세요. 누군가 "어라, 미국 여가수 마야의 노래랑 너무 비슷하네"라고 눈을 치켜 뜨면 "무슨 소리야, 마야 노래 나오기도 전에 만든 건데"라고 강하게 반박하세요.

자신도 노래를 부르십시오. 대중이 반응하는 건 역시 성적인 거니까 그런 노래를. 누가 뭐라고 하면 "건전한 성을 즐기자는 거다"고 역시 큰소리를 치십시오.

미국으로 잠시 건너가서 "미국 가수들에게 노래 주기로 했다!"고 선전하는 것도 좋죠. 결국 못줘도 무슨 상관입니까.

결정적으로는 역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한국도 이제 리듬앤드블루스(R&B) 시대임을 재빨리 간파하고 미국의 최신 리듬앤드블루스 가수들의 노래를 두루 섭렵하십시오. 그리고 유명 보이 밴드에게 노래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누군가 "세상에, 미국 가수 어셔의 최근 인기곡 '유 갓 잇 배드', 미국 힙합그룹 본 턱스 앤 하모니의 '크로스로드'를 뒤섞은 거잖아"라고 화를 내거든 "네소절 이상 똑같아야 표절인거 알지? 네소절을 대봐. 니들이 최신 팝음악 경향을 알아?"라고 반박하세요.

자, 쉽지는 않지요? 이렇게는 못하겠다고요? 그럼 할 수 없죠. 어찌됐든 독창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려고 머리를 싸매는 수 밖에요.

사실 쉽게 부와 인기를 얻는 방법을 알면서도 굳이 어려운 창조의 길을 가는 작곡가.프로듀서.뮤지션들도 한국에 있거든요.아무튼 건승을 빕니다. 또 e-메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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