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제 무대만큼 빛난 국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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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한 출발이었다. 극적인 긴장감과 깊이는 부족했지만 전체적인 조화미는 수준급이었다.

한국 공연사상 초유의 제작비가 들어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총 제작비 1백억원)이 2일 프레스 리허설을 시작으로 개막됐다. 내년 6월 30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장기 공연할 예정으로, 이는 국내 대극장 공연 사상 처음 시도되는 모험이기도 하다.

한국판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의 자본과 외국의 기술력이 만난 합작품이다. 배우는 한국 사람이지만 그외 전 제작공정은 오리지널팀(영국의 RUG)이 주축이 돼 관리한다.

이는 오리지널 공연과 수준차가 없도록 하겠다는 한국측 제작진(제미로)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연출력과 음악.무대.의상.기술적 메커니즘은 역시 수준급이었다. 화려한 의상, 호사스럽고 신비감 넘치는 무대, 전설적인 샹들리에 신도 좋았다.

그러고 나면 남는 '우리의' 승부처는 어디인가. 우리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의 입을 통해 이뤄지는 대사 전달력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평가할 만한 여지는 20~3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이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오페라의 유령'의 전체적인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한데 개막 공연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는 '평균적 수준'을 넘지 않았다. 삼각 사랑의 주인공인 크리스틴(이혜경)-팬텀(윤영석)-라울(유정한)의 연기에는 윤기가 좀 약했다.

특히 팬텀은 괴기스럽지만 독특한 매력이 넘쳐야 하는데, 그런 태가 나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서 좋은 목소리와 매끈한 노래가 관객의 심장 그 깊은 곳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배우 스스로 창조해 내는, 개성있는 카리스마는 없었다는 얘기다. 주연들 외에 조연들의 수준도 매일반이어서 '일단은' 모나지 않은 범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다행인 것은 배우들 대부분이 큰 무대 경험이 적은 신인들이라는 점이다. 날이 갈수록 무대 적응력이 높아질 것이고 연기에도 물이 오를 여지 역시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지나치지 않은 부족함이 더 나은 지도 모른다. 크게 우려됐던 대사(가사)번역에도 무리는 없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앞에서 언급한 역사성 때문에 작품 외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신인들의 대담한 기용으로 배우 시장의 저변을 넓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해외 스태프와 거의 동등한 숫자의 한국 스태프가 조력자로 참여해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도 분명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장기 공연인 만큼 공연 초반의 여러 지적들을 과감히 수용한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 자체로도 한국 공연사의 명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에 대한 모든 칼자루를 외국 스태프가 쥐고 있다는 사실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 숫자로 본 '오페라의 유령'

▶총제작비:1백억원

▶공연기간:7개월(국내 대극장 최초)

▶제작 스태프:2백명(해외 50명.국내 1백50명)

▶한국공연:세계 14번째,도시로는 92번째

▶의상:총 5백50벌.실제 공연에 쓰이는 의상은 2백50벌. 나머지는 '언더(대역)'를 포함해 준비한 옷. 여주인공 크리스틴이 마지막 장면에 입고 나오는 드레스의 무게는 19㎏

▶회당 필요한 가발:70개

▶회당 필요한 신발:2백개

▶무대세트:40피트 컨테이너 17대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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