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약품 1원에 입찰, 문제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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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병원에서 환자에게 직접 투약하는 약품이 한 알당 1원에 제공된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 꼼수나 편법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제약사들 사이에 새로운 관행으로 떠오른 ‘1원짜리 약품 입찰’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오히려 제약사들에 ‘1원 입찰’을 하지 말라고 결의한 한국제약협회의 행위가 공정거래를 가로막는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3일 이런 이유로 한국제약협회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고 협회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약품 공급가격을 입찰에 부친 결과 35개 약품 도매상이 제시한 84개 품목에 대해 한 알당 1원으로 낙찰을 받았다. 정부 당국의 철저한 단속으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에 제동이 걸리자 제약사들이 1원 입찰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자 한국제약협회는 지난해 회원사를 불러모아 1원 입찰을 하지 말라는 결의를 하게 했다. 따르지 않으면 협회에서 제명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제약협회로선 1원 입찰이 자칫 제약사 매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협회는 203개 제약사로부터 매달 300만~765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협회 요구에 따라 16개 도매상이 1원 공급 계약을 파기하면서 보훈공단은 약품 수급 차질을 겪어야 했다.

 제약사들이 1원에 약품을 공급해도 되는 비밀은 약품 유통 구조에 있다. 약품 매출의 80% 이상은 약국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병원 처방 약품으로 등재되면 약국 판매의 발판이 된다. 병원에는 1원에 공급해도 약국에서 정상 가격에 팔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MSD도 1원 입찰에 참여한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성구 공정위 서울사무소장은 “1원 입찰을 통해 건강보험공단 지출이 줄어들고 병원 입원환자의 치료비도 줄어든다”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2010년 15조5696억원으로, 270개 국내외 제약사가 점유율 확대를 위해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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