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명 사살' 스나이퍼 사격장 갔다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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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로 불린 저격수 크리스 카일(39)이 저격수 출신의 총격에 숨졌다. 현지 매체들은 카일과 그의 이웃 한 명이 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포트워스 인근 사격장에서 또 다른 마을 주민 에디 루스(25)가 쏜 총에 숨졌다고 보도했다. 루스는 전직 해병대 저격수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었다. 카일은 루스의 치유를 돕기 위해 사격장에 함께 갔다가 갑자기 돌변한 루스에게 변을 당했다고 한다. 루스는 카일의 트럭을 타고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카일은 PTSD에 시달리는 전역 군인들을 지원하는 재단(FITCO) 설립에 관여하는 등 이들의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트레비스 콕스 FITCO 국장은 “미국은 평생 애국자였던 영웅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집계 결과 지난해 미군 자살자(349명)가 전년 대비 15% 증가해 전사자(295명) 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수많은 전·현직 미군이 전쟁·고문으로 인한 공포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이 벌이는 자살과 살인·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전역 장병의 고용을 꺼리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카일은 11년간 미 해군 네이비실 저격수로 복무하며 255명(미 국방부 공식 확인 기록으론 160명)의 적을 사살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로부터 처음 총 쏘는 법을 배운 그는 카우보이로 일하다 1999년 입대했다. 이라크로 파견된 2003년 봄 처음 저격의 순간을 마주했다. 차도르 차림으로 수류탄을 들고 미군 쪽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향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사살 직전 상대가 여자라는 점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고 지난해 BBC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이후 2004년 팔루자에서 40명의 반군을 사살하며 카일은 미군에겐 전설로, 현지인에겐 ‘라마디(저항 세력 거점)의 악마’로 불렸다. 1.9㎞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반군은 그의 목에 2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두 차례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카일은 2번의 은성무공훈장, 5번의 동성무공훈장을 받는 등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2009년 결혼과 함께 퇴역한 후엔 전투원을 훈련시키는 업체를 운영해왔다. 지난해엔 자신의 무용담을 담은 책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출간해 유명해졌다.

 전쟁 때마다 저격수는 최고의 영웅이었다. 어델버트 왈드론(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메콩강 정글에서 베트콩 109명을 사살했다. 핀란드의 시모 해이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설원에서 소련군 505명을 저격해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얀 죽음’이란 별명을 가진 그는 햇빛이 반사돼 적에게 노출된다며 망원경을 부착하지 않은 채 이런 전과를 올렸다. 소련의 바실리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400여 명을 사살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중 상당수를 1㎞ 바깥에서 명중시켰다고 한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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