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4년 재선을 위해 출마했을 때 독점 해체를 선거 쟁점화했다. 그는 선거에서 당선되자 독점기업이었던 스탠더드 오일, 총합 담배회사, 철도회사들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했다.

그후 태프트,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이어지는 기간 중 많은 독점기업이 해체됐으며, 경제관계법이 제정돼 기업과 정부의 관계가 재정립됐다.

이 시기를 9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포겔 교수는 그의 저서 '위대한 네 번째 각성(覺醒)과 미래의 평등주의'에서 미국의 세번째 각성 기간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의 효율과 사회적 조화가 이뤄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각성이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재계는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정책에 관해 많은 우려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수 거대 기업들이 왕성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재계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앞으로 새 정부에서 수행될 경제정책 조치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투자계획들에 차질을 초래하게 되므로 성장 지표에 급급한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과거 정권들에서도 많이 경험했다. 최근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검토하게 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분과위원들이 진보적 학자들로 구성되고 선거 공약으로 제시됐던 사항들이 논의되자 아직 차기 정권의 경제정책의 윤곽이 확정되기도 전에 경제단체들은 반격을 시작하고 인수위원회 측은 이를 무마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새로이 출발하게 될 노무현 정권은 대통령 선거에서 쟁점이 됐던 경제 관련 공약들을 정책화해 한국 경제사회의 효율과 조화를 위한 청사진을 정확히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국민 사이에 새로운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함께 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을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욕구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올해 국내외 경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예상대로 2월 중 발발할 경우 유가의 폭등으로 인한 단기적 세계경기 부진이 우려되고, 이는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이 경우를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가 사전에 준비돼야 할 것이다. 또한 차기 정권은 현 정부로부터 3백만명에 가까운 가계 신용불량자, 그동안 투입된 공적자금의 적정성 문제, 구조조정의 부진, 빈부격차의 확대 등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넘겨받고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노무현 정부의 2월 25일 출발에 앞서 여론에만 민감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국내외 경제에 대한 엄격한 판단 아래 장.단기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정권들의 경제정책 이행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체험했다. 당연히 관철돼야 할 정책들이 상황을 빙자한 로비에 의해 무산되기도 하고, 명분에 집착해 집행된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오들을 차기 정부는 반복하지 않아야 장기적인 안정성장의 기반 구축과 사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당선자는 경제정책, 나아가서는 국가경영 전반에 있어 지식의 폭발적 증가와 정보의 홍수, 높아지는 교육수준과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증가로 인한 국민의 변화된 의식으로 국민은 조작되고, 지배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무현 당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서는 안될 것이다. 차기 정부 경제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는 노무현 당선자이므로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정책 방향을 기대해 본다.

김종인

◇약력=서독 뮌스터대학 경제학 박사,전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전 보건사회부장관,11,12,14대 국회의원.

<바로잡습니다>
◇1월 20일자 7면 '김종인 칼럼'의 약력 중 '현 명지대 초빙교수'는 잘못 알려진 것이어서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