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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몰상식한 「상식」|우등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무슨 일에나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거나 변명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평범한 상식에 따르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는 이성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유연애주의자가 된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결혼 신성론자가 되고. 그는 「범인」이 하는 짓을 하면서 함께 살지만 기분만은 범속하지 않다. 다만 딱한 일이 있다면 그가 미성년의 상태에 있다는 점 일게다. 성숙한 사람은 불합리한 점이 있는 줄 알고도 상식에 따르는 타협의 태도를 가진다. 그런데 상식적인 통념이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심지어는 생사람 잡는 고정관념이 멀쩡하게 양식으로 행세하는 수도 있으니 성숙한 인격만 찾을 것이 아니다. 자명한 것으로 통용되는 것의 바닥을 캐물어 보자. 궤변을 희롱하기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밝은 살림을 의해서 「몰상식한 상식」을 해부해보자.
해마다 입학기에 장한 얼굴들이 신문에 난다. 수석 입학자의 자랑스러운 모습들이다. 영광의 주인공은 의젓하게 한마디한다-『뭐 특별한 비법이 있는게 아니고 평소에 꾸준히 노력한 것뿐이죠. 선생님과 부모님의 덕이 크고….』영광의 어머니는 코가 높아진다. 『얘는 가정교사도 들이지 않고 과외공부도 안 시켰는데 워낙 머리가 좋아서…. 』 아니 수석 입학이 아니라도 좋다.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이나 힘든 관문을 뚫고 들어간 판에 꼴지 합격자도 우등생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가지 신화가 생겨난다. 『얘는 5살 때 ABC…를 다 외었지 뭡니까!』 『어머, 그래요? 우리 애는 네 살 때 그걸 외었어요. 머리는 좋은 앤데 그만 실수를 해서.』 불합격자의 어머니는 말끝을 흐린다. 유전학적 주장은 「타인의 시선」앞에 힘없이 굴복하고 만다. 교육열이 왕성한 많은 어머니는 아이가 5살이 되면 친구를 적으로 알도록 훈련시킨다. 국민학교 입학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우월감 열등감이 어린 마음을 멍 들인다. 모든 값있는 것은 시험 점수와 석차 순으로 환원된다.
누가 무슨 장난을 즐기고 누구의 성질이 어떠하며 누가 마음이 좋고 나쁜지는 유치한 문제, 도무지 문제도 안 된다. 국민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사다리의 중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어린이와 소년들은 비정의 숫자의 노예가 되어야한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자기를 속이는 일도 사양치 않는다. 한 소년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구두 시험관의 물음에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물론 존경의 대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년은 『그렇게 답하면 시험관이 좋아할 줄 알고 그랬다는 것이다. 아! 자유로운 개성의 성장을 막고 정서를 메말리고 건강을 해치는 교육. 도대체 이렇게 괴상한 교육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우등생 위주의 비인도주의 교육은 아마도 우등생들이 만들어내서 유지시키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없앨 수 있는 자는 참된 의미의 열등생뿐이다. 열등생이 귀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등생이 귀하지 열등생은 흔하다고? 천만에 그들의 대부분은 점수를 약간 덜 탔을 뿐이지, 우등생이 되려고 노력하고, 우등생을 존경하며 이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우등생 이상으로 우등생인 「가짜 열등생」이다.
참된 열등생.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요구에 굴복하지 앉으며 자기의 생활을 사랑하고 가꾸는 사람. 다른 사람과 「콤플렉스」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 지식이나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 자기를 비하하지도 뽐내지도 않는 사람.
이들만이 밝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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