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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두 번째의 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흥원」(흥선대원군의묘)이 16일 하오 3시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운천리에서 양주군 화도면 창현리 운현궁 가족묘지로 천봉되었다.
대원군이 서거하자 그의 유해는 생전에 그가 보아두었던 공덕리(서울 마포구 공덕동 현 동도중학 자리)에 안장되었다.
그후 1907년 대원군이 서거한지 9년만에 궁내부대신 이운용의 주본(임금께 아뢰는것)으로 공덕리가 원소로 좋지 않다하여 운철이로 천봉 이해 12월 27일 하관되었다.
흥원천 봉천록에 의하면 이 천봉공사는 당시 5만환의 국고로 연인원 3천명을 동원, 한달 이상 걸렸다고 한다.
당시 항간에서는 민비가 책동하여 부자사이를 떼어놓으려고 왕궁에서 먼 곳으로 옮기게 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운현궁 측은 기찻길이 가까워서 기적소리로 원소가 울리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흥원의 두 번째 천봉 계획은 지난 5월10일쯤 대원군의 증손 이우공(「히로시마」원폭투하때사망)의 부인 박찬주 여사와 미국에 있는 맏아들 이청씨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wu 시작한 것.
1천 여명의 인부와 1백 여만원의 경비(운현궁 부담) 미제 2사단 공군 106부대 수송대 등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이 작업은 16일 하관과 평토로 일단 끝이 났다. 제단을 향해 왼편에 대원군비 민씨, 오른편에 대원군의 재실이 묻혔다.
이 천봉 작업에서 발굴된 것은 놋주발, 백동수저, 안경, 옥돌, 벼루, 비녀, 금박도표와 대원군과 대원군비의 일대기를 기록한 지석 등이었는데 하관과 함께 다시 원소에 묻혀졌다.
두 번째 천봉동기를 운형궁 측은 ①6·25때 원소가 피폐했다. ②일선 지구이므로 포성이 들리는 등 혼백이 편안치 못하다. ③성묘하기 어렵다. ④봉분 바로 뒤에 미군부대가 있고 근처에 난민 2백 여가구가 살뿐 아니라 인근에 매춘부들이 많은 등 원소로 적당치 않다는 등 이유를 들고 있다.
운현궁 가족 묘지를 골랐다는 운송선생은 운천리는 산 모양이 뱀머리 모양이어서 좋은 자리가 아니지만 창현리 가족묘지는 산 모양이 모란꽃이 반쯤 피어오른 형상이고 춤을 추는 신선의 부드러운 손과 같은 형상이어서 산소 주위를 둘러싼 산이 좋고 물이 잘 드나들고 청룡백호가 뚜렷한 점등 이른바 명당이라고 말한다.
생전에 파란만장의 생애를 보낸 대원군은 죽은 뒤에도 두 차례의 천봉을 하게 되는 등 많은 풍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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