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또 할래? 비장함이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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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메이커(pacemaker)는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등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다. 페이스메이커가 중요한 이유는 우승·메달을 목표로 하는 선수가 페이스 조절을 잘 하도록 함께 달리며 도와주기 때문. 42.195㎞를 완주할 경우 30㎞정도를 달리면 물러난다. 그 이후부터는 선수 본인의 몫이다. 수험생활이라는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로 ‘기숙학원’을 선택한 학생들은 어떤 하루를 보낼까.

오전 6시30분, 이천탑클래스기숙학원 학생들이 복도에 일렬로 서 친구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캄캄한 아침, 이천탑클래스기숙학원 학생들이 복도에 일렬로 서 체조를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아직 잠이 덜 깬 친구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기숙학원에서의 24시간은 빡빡하고 힘들지만 활기차고 즐겁다. 하루 스케줄은 ‘아침체조-세면-듣기평가-정규수업-자율학습-취침’으로 이뤄진다. 학생들은 수업과 자습시간 사이의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취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우당탕탕’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고등학교 때의 모습 그대로다. 식사시간은 역시 유쾌하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이 다시 하나 둘 강의실로 들어온다. 오후 수업시간이면 느껴지는 나른함 따위는 없다. 칠판을 보는 눈빛이 반짝인다.

 기숙학원 내 개인 독서실에 가보니 ‘나만의 공간’이 ‘나에게 하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수학공식’ ‘영단어’ ‘나와의 약속’ ‘흔들리지마!’ ‘내년에 또 할래?’ 등의 글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더 도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비장함이 전해진다. 학생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율학습을 한다. 자율학습시간은 ‘자습’ ‘스터디’ ‘특강’ ‘학습매니지먼트’ 등으로 구성된다.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알차게 시간을 보낸단다.

 이곳에서 만난 한영록(20·현풍고 졸업예정)씨는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의 통제 하에 이루어지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점차 습관화돼 이제는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버려질 수 있는 5분, 10분의 자투리 시간들조차 아껴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정 즈음, 학생들이 취침준비를 시작했다. 불이 하나 둘 꺼진다. 학생들은 ‘수능 만점’을 꿈꾸고, 기숙학원은 페이스메이커로서 ‘백점’을 꿈꾼다.

  배은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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