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릴레이] 화성 탐사선 실종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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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잡지를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톰 크루즈를 소개하는 기사에 그의 키가 1백73㎝라고 표시돼 있었다.

그 옆에는 친절하게도 5′7"라는 피트.인치(미국식 단위) 로까지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5′7"는 1백73㎝가 아니라 1백70㎝에 불과하다.5′7"란 5피트 7인치라는 뜻인데, 기자는 1피트가 10인치인 줄 알고 30.48㎝(1피트) 에 5.7을 곱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1인치는 12분의1 피트라서 피트에 5.7을 그대로 곱하면 잘못된 값을 얻게 된다.

나라마다 다른 단위를 사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국가간 교류가 긴밀한 상황에서 표준 단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배우의 키 같은 사소한 예를 넘어서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몇년 전 있었던 미국 화성 기후 궤도선의 실종은 '표준 단위 사용의 중요성'을 보여준 값비싼 교훈이 아닐까 싶다. 1999년 9월 화성의 기후를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1천6백억원 짜리 기후 궤도선이 화성 궤도 진입을 앞두고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제트추진연구소 내부 조사팀의 원인 조사에 따르면, 우주선을 제작한 록히드 마틴사의 기술자들이 우주선의 추진력을 킬로그램이 아닌 파운드로 표기해 미 항공우주국(NASA) 의 과학자들을 혼동시켰다는 것이다.

우주선이 제작되는 기간 내내 아무도 그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했고,그 바람에 화성 기후 궤도선은 화성에 접근하면서 코스를 96㎞나 이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록히드 마틴의 비행 시스템 담당자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사태가 그렇게 간단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진시황의 업적에 '도량형의 통일'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가끔 동사무소나 시청 등에서 '올바른 계량단위를 사용합시다' 라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아직도 근이나 평.마지기 같은 단위를 사용하는 농민들에게 계량단위의 국제표준인 미터법을 사용하자는 정부의 호소문이다. 여전히 미터법에 어둡고 마일이나 파운드만을 사용하는 미국의 오만함에도 이런 현수막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임경순.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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