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문학을 불질러도 문단은 왜 말이없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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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문학이 모독당하는 일이 생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문열씨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겐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수많은 문학 단체의 침묵은 또 뭡니까.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없이 그냥 넘기는 건 문학하는 사람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박완서씨는 웬만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무슨 사건이 터져 거기에 대한 '고견'을 꼭 듣고 싶어 원고 청탁에 들어가면 번번이 거절입니다. "제가 뭘, 거기에 대해 할 말이 있겠습니까"며 수줍은 말투로 완강히 거부만하던 박씨가 이번에는 절로 터져나온 듯 '발언'을 했습니다.

곧 나올 '문예중앙'겨울호에 실릴 인터뷰 기사에서 박씨는 지난 3일 벌어진 이문열씨의 책 장례식에 대한 충격을 위와 같이 토로하며 분개했습니다.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 의 반문화적 행동에 대한 질책이면서도 그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작금의 문단에 대한 분노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문인을 존경한다. 그런 사랑과 존경이 없었더라면 내가 감히 어찌 '한국 문학의 위선과 기만'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겠는가. 이는 결코 모순이 아니다. 나는 한국 문인들 거의 대부분이 원치 않는 구조와 질서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구조와 질서는 영원불멸의 것이 아님을 믿는다. 나는 기존 구조와 질서가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미력이나마 일조하고 싶을 뿐이다."

강준만(전북대 교수) 씨는 최근에 펴낸 『한국 문학의 위선과 기만』(개마고원.9천8백원) 에서 위와 같이 말하며 한국 문단과 문인의 행태를 매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문단의 아웃사이더로서, 해서 끝끝내 한국 문학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입장에서 나온 말이어서 그런지 우리 문단의 아픈 부분을 시원스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단의 '기존 구조와 질서'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 지적이 몹시 못마땅하고 아플텐데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올해 중앙일보는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제정했습니다. 심장에 펜촉을 콕콕 찔러가며 쓴 원고로 남의 가슴에도 그런 감동을 줄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을 고르기 위해 심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름을 대면 독자들도 알 만한 몇몇 문인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왜 내가 탈락됐으며 심사 기준이 뭐였느냐는 것입니다.

문학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 정말이지 문학이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문학을 불질러 장사 지내고, 논객들은 문학의 행태를 마음 다잡은 듯 비판하고, 문인 스스로도 문학이 무어냐고 묻고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시위하듯 말입니다. 그런데도 문단, 문학단체와 문예지들은 꿀먹은 벙어리같이 묵묵부답입니다.

문학의 영토를 사회와 정의와 역사의 명분으로 마구 확장시킬 것이 아닙니다. 순수의 이름으로 웅크려서도 안됩니다. 문단은 이제 다시 문학은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해주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문학 자체는 무엇인가를 소리 높여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문학은 조용히 그 모든 것을 위하고 아우르는 문학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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