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넘긴 '누벨 바그의 여신' 잔 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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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성이면서 영원한 학생입니다. 죽는 날까지 삶의 새로움을 추구할 겁니다."

17일 폐막하는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프랑스 여배우 잔 모로(72) 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삶의 에너지는 여전히 충만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미리 준비된 자신의 명패를 재빠르게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재치와 여유가 느껴졌다. 이게 바로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 정신일까.

부산영화제는 20세기 후반 프랑스 영화계를 상징했던 잔 모로의 공적을 기리는 특별전을 열었다.대표작 '연인들'(루이 말 감독.1958년) ,'쥘과 짐'(프랑수아 트뤼포.62년) 과 올해 신작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조세 다이안 감독) 등 세 편을 상영했다.

모로는 50~60년대 프랑스 영화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누벨 바그 운동을 주도한 감독들에게서 러브콜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 그래서 '누벨 바그의 여신'으로 불린다. 할리우드 거장인 오손 웰스조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배우'란 찬사를 보냈다.

모로는 "나는 누벨 바그와 함께 태어났고, 누벨 바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사조로서의 누벨 바그는 끝났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누벨 바그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앞으론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삶을 살 겁니다. 제가 받았던 혜택을 돌려줘야죠."

그는 7년 전부터 프랑스 신진 작가.감독들을 지원하고 좋은 작품을 투자자들과 연결해 주는 에퀴녹스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연극.영화 연출에 눈을 돌린 것도 자신의 폭넓은 경험을 나눠주려는 작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들을 그렸습니다. 특히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은 한참 어린 남자와 16년간 사랑을 나눈 소설가 뒤라스의 얘기지요. 사랑이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 열정 아닐까요. 사랑은 포기할 수 없고 나이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는 "제목은 잊었지만 파리에서 몇 편의 한국영화를 보고 그 섬세함과 독창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영화의 본질은 자유이며, 영화가 살아있는 나라는 자유로운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도둑'이라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가 발전하려면 할리우드에서든 유럽에서든 훌륭한 것은 모두 따오겠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치 수용소에 갇혔던 한 여인의 실화를 다루는 새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잔 모로. 체구는 작지만 당당한 모습의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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