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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빌빌 세대'의 프로포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즘 대학가의 취업난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전체 실업률이 그다지 높은 건 아닌데도 청년 실업, 특히 대졸자의 취업 사정은 사상 최악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웬만한 대기업 공채시험의 경쟁률은 1백,2백대 1을 훌쩍 넘어간다. 한 취업알선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1백번 이상 원서를 냈는데도 구직에 실패한 대졸자의 경험담이 영화타이틀인 '100번째 프로포즈'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씁쓸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79~86년생 최악의 취업난

심각한 취업난은 대학가에 신조어를 만들어내곤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대학졸업자들은 '잃어버린 세대'로 불렸다. 최근 대학가에는 '빌빌 세대'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대학생들이 취직도 못하고 빌빌대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비유한 유행어다.

얼마 전 한 경제연구소는 빌빌 세대를 제법 그럴듯하게 인구학적으로 설명할 자료를 냈다. 이 연구소는 최근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젊은층을 3차 베이비붐 세대(1979~86년생)로 분류했다. 현재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의 연령대다.

1차(55~63년생).2차(68~76년생) 베이비붐에 이어 출산이 많았던 세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86년 이후 국내 출산율은 1.4%대에 머물러 있다.

3차 베이비붐 세대가 대졸 취업현장에서 맥을 못추는 건 단순히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92년까지 35% 안팎에 머물던 고교생의 대학진학률은 98년 60%대에 진입한 뒤 올해는 70%를 넘어섰다.

불행히도 이들 세대는 98년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 높은 출산율과 높은 대학진학률이 겹쳐졌으니, 대졸 취업시장에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여기에 취업 환경까지 3차 베이비붐 세대에게 매우 불리하게 변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사원모집 방식을 대규모 공개 채용에서 소규모 수시 채용으로 바꾸고 있다. 또 신입사원보다 경력사원을 좋아한다. 이런 추세는 경제 내.외적으로 특별한 전기가 없는 한 이어질 것이다.

전문자격증을 따고,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기존의 '취업방정식'에 따라 착실히 준비해온 학생들조차 올해에는 크게 당황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취업의 보증수표였던 세무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은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그 위력이 사라졌다.

최근 15명을 뽑는 한 금융기관의 채용시험에 경영.경제학 석사소지자 1백여명이 지원해 4명만 합격할 만큼 '가방 끈' 역시 약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3차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생들은 높은 대학진학률과 불리한 취업상황 때문에 빌빌 세대로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빌빌 세대의 고난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취업재수생까지 말끔히 없애줄 정도로 엄청난 일자리가 생겨나는 고도성장시대가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행히 대학진학률이 유지된다 해도 2007,2008년까지 이들의 애환은 계속될 전망이다.

빌빌 세대들은 이런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적응해야 한다. 우선 언제든지 눈 높이를 낮출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 눈높이 과감히 낮춰야

대기업 취직이 당장 어렵다면 과감하게 건실한 중소기업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좋다. 중소기업의 경력이 대기업 입사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또 자기만의 생존무기와 끼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신규 취업시장을 노려야 할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수도권 대학의 취업담당자 K씨는 영국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을 빗대 대학가의 취업난을 설명했다.

취업정보실에 들어오는 기업체 추천서는 산술급수인 하나.둘.셋 식으로 들어오는데, 일자리를 찾는 학생은 하나.둘.넷.여덟 식으로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난다고 그는 소개했다.

치열한 취업전쟁이 벌어지는 요즘, 빌빌 세대여 좀더 힘을 내자. 모든 게 그대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이규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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