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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경제 대장정] 12.지도를 바꾸는 대역사-난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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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노인(愚公)이 산을 옮겼다(愚公移山)'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고사다. 먼 옛날 우공이란 90세 노인이 살았다. 그는 집앞에 있는 태형(太形).왕옥(王屋)산 때문에 길다니기 어렵다며 산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들들과 함께 매일 두 산의 흙을 퍼내 동쪽 바닷가에 버렸다. 이웃의 지수(智搜-手:똑똑한 늙은이)가 터무니 없다며 비웃었지만 우공은 "산은 유한하지만 내 자손은 무한하다.

자자손손 옮기면 산이 먼저 없어질 수밖에 없다"며 산옮기기를 계속했다. 기거할 곳이 없어지게 된 두 산의 산신령이 화들짝 놀라 옥황상제에게 산을 옮겨달라고 간청했다. 상제는 두 산을 통째로 들어 각각 동쪽과 남쪽으로 옮겼다.

중국 서부대개발의 현장에는 '손으로 산을 옮긴' 우공의 자손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깐쑤(甘肅)성 난저우(蘭州)시에서 60㎞쯤 떨어진 유쟈샤(劉家峽)댐 공사현장. 댐 주위엔 누런 흙을 그대로 드러낸 민둥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산마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풀과 나무를 심고 있다. '민둥산을 초목이 우거진 숲으로 만든다(退耕還林)'는 난저우시의 서부개발사업이다.

당장 떠오르는 의문 하나. 연평균 강수량이 3백20㎜ 안팎인 이곳에서 심은 풀과 나무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취재팀을 안내한 난저우시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종웨이링(鐘維玲.여)부장은 "산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산이란 산마다 댐에서 산 정상까지 물을 퍼올리는 파이프가 설치돼 있다. 이렇게 끌어올린 물을 스프링 클러로 뿌려 풀과 나무를 키운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간 남한면적의 절반쯤 되는 6천6백만무(畝:4만4천㎢)의 민둥산에 이런 식으로 숲을 '이식'하겠다는 게 중국정부의 계획이다. 그래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았다. 이런 무모한 공사가 경제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대로 두면 오는 2030년께 황허(黃河) 이북은 물 부족 때문에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됩니다. 반면 중국 인구는 16억5천만명을 넘게 되지요. 서부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사업은 그래서 국가의 흥망이 걸린 일입니다."

짐짓 엄숙하기까지한 鐘부장의 설명에는 이 사업에 경제성이 있느냐는 한가한 셈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퇴경환림만 그런 게 아니다.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에서 쓰게 한다는 '서기동수(西氣東輸)'도 무모해보이긴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중국의 서북쪽 끝인 신장(新彊)자치구의 타리무(塔里木)분지~상하이(上海)에 4천2백㎞의 가스관을 건설해야 한다. 가스관 길이만 경부고속도로를 다섯번 왕복할 정도다.

중국 대륙에 가로.세로로 각각 8개씩의 간선도로를 내는 '팔종팔횡(八縱八橫)'의 대표적 노선인 칭장(靑藏)철도는 한술 더 뜬다.

칭하이(靑海)성 커얼무(格爾木)~티벳의 라싸(拉薩) 간 1천1백㎞ 구간중 9백60㎞는 보통사람이라면 숨쉬기조차 어려운 해발 4천m 이상의 고지를 관통해야 있다. 서부대개발에서도 난공사중에 난공사로 꼽힌다.

'남수북조(南水北調)'는 남쪽 창장(長江)의 물을 가뭄에 허덕이는 북쪽 황허(黃河)로 끌어가는 공사다. 이를 위해 1천㎞가 넘는 대운하를 세 개나 만든다는 계획이다. 한국에서 누가 부산~신의주 거리의 운하를 세 개 판다고 하면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서부사람들은 이런 걱정은 아랑곳없이 당장 개발이 가져다줄 단꿈에 흠뻑 젖어있었다. 북방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敦煌)에서는 공항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비행기표를 버스표처럼 사람이 손으로 써서 줄 정도로 형편없는 현재 공항을 최신 시설로 바꾸는 공사다.

공항 안내원은 "전에는 중형 프로펠러 비행기 운항이 고작이었지만 지난 8월 새 활주로를 먼저 개장해 지금은 보잉737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며 "덕분에 항공편이 늘고 외국 관광객도 덩달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공항택시기사 한창스(韓昌世)씨는 "신청사 완공후엔 손님이 더욱 늘고 지역경제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며 신바람이 났다. 깐수성의 오지인 둔황에서도 개발열기는 되돌릴 수 없는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현실로 되기까진 넘어야할 산이 높다.

"서부대개발에 외국자본을 끌어 들이기 위해 중국정부가 온갖 '당근'을 내놓고 있지만 홍콩.대만자본조차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50년이나 내다봐야 하는 엄청난 규모인데다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고광석(高光奭)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은 규모도 규모지만 결국 '돈'이 서부대개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정부는 서부대개발에 50년간 1조달러(약 1천3백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외국자본없이 중국정부 혼자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금액이다.

개발초기인 지금은 어떻게 꾸려간다해도 2005년부터 철도.도로.가스관.공항 등 각종 인프라 건설이 본격화하면 외국자본 유치가 개발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중국 정부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외국인 투자는 서부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 기간중 서부투자는 99억달러로 동부투자 2천7백억달러의 3.6%에 그쳤다.

우공의 시절엔 옥황상제가 두개의 산을 옮겨줬지만 서부대개발의 옥황상제랄 외국자본은 목타는 주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좀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난저우의 허쉔칭(何栓慶) 국제무역촉진위원회 부회장은 이런 주민의 염원을 잘 전해달라며 중국속담 하나를 소개했다.

"吃水不忘打井人(우물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우물을 판 사람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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