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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다시다·해바라기씨…짝퉁 천국 중국 없는 게 없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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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난하이(南海)에 살고 있는 시아오휘(小辉) 군은 대학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배가 고파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과자를 사 먹었다. 평소 즐겨먹던 말린 고구마 과자인 ‘蒸薯坊’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과자 겉포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제품명이 ‘烤薯坊’이었던 것이다. 맨 앞 한 글자가 달랐다. 그러나 ‘몇 개 먹는다고 문제 있겠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먹었다. 잠시 후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국 급성장염 판정을 받았다. 수험생이었던 시아오휘 군은 이후 한 달간이나 몸조리를 해야 했다. 그는 “몸 아픈 건 둘째치고라도 대입시험을 앞둔 시기에 수업을 못들어 손해가 막심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중국내 패스트푸드 1위 브랜드인 KFC의 짝퉁 KFG 매장

중국에서 짝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짝퉁을 중국어로는 ‘샨짜이(山寨)’라 부른다. 제품도 전자기기, 자동차, 의상, 식품 등 어떤 영역을 막론하고 전역에 퍼져있다. 중국 곳곳에는 유명 의류 및 가방 브랜드를 흉내낸 짝퉁 제품만을 파는 시장도 형성돼 있다. 겉으로 보기엔 루이비통·샤넬과 똑같지만 가격은 정품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단속도 허술하다. 오히려 해외 방문객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의류나 가방은 고객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산다. 먹는 것이 아니니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식품'은 다르다.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 무, 플라스틱 국수, 비닐 미역은 중국에서 실제 ‘식품’으로 유통된 가짜 식품들이다. 계란과 수박도 가짜가 있다. 중국에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짝퉁 식품들은 발암물질과 독극물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짝퉁 농산물의 품질도 문제지만 짝퉁 가공식품은 정품 생산업체에까지 타격을 준다. 한국 식품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의 식품이 중국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짝퉁 식품은 정말 달갑지 않은 손님인 것이다.

▲ KFC 정품 로고(왼쪽)와 짝퉁 로고

■ 한국식품, 수요 늘어만 만큼 짝퉁도 기승

#2. 지난해 8월 2일 가짜 ‘CJ 소고기다시다’ 조미료를 제조, 판매해온 박모 씨 일당이 중국 연변(延邊)에서 검거됐다. 조선족 매체 연변일보에 따르면 이들은 2009년부터 중국 절강성·산동성 일대에서 한국CJ(청도)식품유한회사의 소고기다시다 상품 포장지를 구입한 뒤 연길시 한 식품업체에서 생산한 소고기가루를 넣어 둔갑시켰다. 이들은 이 짝퉁식품을 길림성·흑룡강성·요녕성·북경·천진 등 지역에 팔아왔다. 이 같은 수법으로 취한 부당이득은 무려 200만 위안(한화 3억6000만 원). 연길시 공안국 경찰은 지난해 3월 이들에 대한 제보를 받고 4개월여 간 추적해 용의자 14명을 검거했다. 불법 생산공장 4군데의 대량 설비도 모조리 몰수했다.

CJ제일제당은 1995년 산동성 청도(靑島)에 식품법인(CJ청도식품유한회사)을 설립하며 현지에서 다시다 제품을 직접 생산했다. 다시다가 현지에서 점차 인기를 끌자 곧이어 짝퉁 다시다가 등장해 버젓이 CJ이름으로 유통됐다. 이에 CJ청도식품유한회사는 선양(瀋陽)·대련(大連)·연길·장춘(長春)·목단강(牧丹江)·위해(威海) 등지에서 30여 불법 판매상을 신고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많이 사는 선양을 중심으로 가짜 다시다는 계속 팔려나갔다. CJ 관계자는 “짝퉁 다시다는 내용물에 세균이 많아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 롯데칠성음료 알로에 캔음료 가짜(왼쪽)과 정품(출처 糖酒快讯)

#3. 중국 인터넷 매체인 탕주속보(糖酒快讯)는 2010년 한국산 수입식품 보도를 통해 롯데칠성음료의 알로에 음료 짝퉁 가능성을 소개했다. 보도에서 롯데칠성음료의 알로에 음료 캔 2개 중 하나는 한글로만 제품표시가 돼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글 제품 위에 중국어 라벨이 부착돼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식품기업이 중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두면 중국어로 전 제품을 생산·포장한다. 따라서 만약 제품이 한글로만 돼 있다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한국에서 만들어진 식품이긴 하되 정식으로 통관절차를 거쳐 수입한 제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애당초 중국에서 만들어진 짝퉁 식품이다. 특히 가격이 지나치게 싸면 짝퉁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개당 5.5위안(한화 940원)에 팔렸다. 5.5위안이면 도매시장에서는 4위안(한화 680원) 정도로 책정된다. 하지만 이 제품의 도매시장 가격은 겨우 2.33위안(한화 396원). 싸도 너무 싸다. 짝퉁일 확률이 크다.

■ 미투제품과 짝퉁제품 차이점은?

‘미투’ 제품과 ‘짝퉁’ 제품은 그 구분이 모호하지만 업계에서는 다르다. 농심의 새우깡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새우깡과 유사한 제품 혹은 성분을 더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B사가 b브랜드로 출시했다면 미투 제품이다. 하지만 C사가 마치 농심을 사칭해 새우깡인 것 마냥 가짜 새우깡을 내놓았다면 짝퉁이라는 것.

짝퉁 식품은 식품 관리가 비교적 철저한 대형마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소규모의 구멍가게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농심 중앙연구소 고민호 연구소장(공장장)은 “바코드 인식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마트에는 짝퉁 식품이 진입하기 어렵지만 구멍가게에는 이 시스템이 없어 짝퉁 식품 관리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바코드에는 제품 생산지역 및 제조자 등 정보가 낱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중국에서 시판되는 농심 제품들. 이 중 짝퉁이 교묘하게 숨어있다.

농심은 중국 내 생산공장을 갖추고 중국어판 제품을 생산·판매하며 1000억 원 규모의 내수시장을 개척한 상황이다. 그중 신라면(60%)과 새우깡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인기를 끄는 만큼 이들 제품의 짝퉁도 많다.
고 연구소장은 “현지 곳곳에 파견된 직원들이 짝퉁으로 의심되는 제품을 발견하면 즉시 연구소로 가져와 면발과 스프의 맛·냄새를 확인하는 관능검사를 실시함과 동시에 포장지의 인쇄 선명도 등을 살펴본다”고 밝혔다.

■ 정품 본 적 없는 중국인은 당하기 십상

▲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다 제품 정품(오른쪽)과 짝퉁

#4. 산동성 제남시에 거주하는 중국인 왕이판(王一凡·가명·38세女)는 한국배우 김민종의 팬이다. 올 봄 김씨의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그녀는 친구들과 돈을 모아 한국에 올 예정이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도 다운 받는다. 하지만 식품과 화장품은 예외다.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다 정품을 본 적이 없어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씨는 얼마 전 여동생이 서울 명동에서 사온 화장품과 똑같은 화장품을 중국에서 발견하고는 구입했다. 하지만 여동생이 사다준 화장품과는 많이 달랐다. 냄새도 역했고 발림성도 달랐다. 짝퉁 화장품이었다. 가짜 화장품에 놀란 초씨는 더욱 한국 식품을 사먹기 두렵다고 했다.

기자도 2년간의 중국생활 동안 마트에서 초코파이·새우깡의 유사 제품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심지어 진짜 새우깡인 줄 알고 샀다가 빗살무늬가 약하고 바삭하지도 않아 반쯤 먹고 버린 적이 있다. 이처럼 한국인도 분간하기 힘든데 본 제품을 먹어보거나 구경조차 하지 못한 중국인들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이다.

초씨는 “중국에서 유명한 사이다를 가판대에서 사서 한 입 들이켰는데 맛이 이상해서 제품을 다시 들여다봤더니 포장이 어딘가 어색해 바로 버렸다”며 “하지만 한국식품이었으면 원래 그런 맛이라고 알고 먹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짝퉁 생산공장 ‘먹고 튄다’

그렇다면 짝퉁식품을 생산하는 출처는 어디일까? 과연 잡을 수 있을까? 롯데제과 안성근 홍보과장은 “대부분이 단속을 피해 단기간 반짝 출시하고 제품을 바꾼다”고 말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때문에 ‘먹고 튄다(먹튀)’는 것이다.

안 과장은 “게다가 이들 불법 생산공장들이 외각에 위치한 후미진 곳에 숨어있어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에서 이들을 찾아내기란 한강에서 바늘찾기”라고 덧붙였다.

(주)농심 고민호 (상해)중앙연구소장도 “규제가 엄격한 대도시보다 동북 3성 지역과 변두리에서 짝퉁 식품이 많이 발견된다”며 “대부분이 영세한 상인들”이라고 말했다.

▲ 에너지음료인 레드불 정품(왼쪽)과 짝퉁 비교(출처: www.21food.cn)

■ 한국 식품업계 “중국 정부와 껄끄러워졌다간…”

중국에서 왕성한 사업을 펼치는 한국식품업계는 짝퉁 식품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껄끄러워지면 사업에 방해가 될까봐”여겨서다.

이번 취재를 위해 국내 주요 식품기업 20여 곳에 전화를 걸어 중국에서 짝퉁으로 피해본 사례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해당 질문과 우리 회사는 관련이 없다” 또는 “우리 회사는 취재 대상에서 제외됐으면 좋겠다. 다른 기업을 취재하길 바란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짝퉁 식품으로 피해본 경험이 있는 A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인데 짝퉁을 문제시 삼는 우리의 모습이 중국에 비쳐지면 사업에 제약이 따를까봐 나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는 “짝퉁이 이미 중국에 나와 많이 있지만 정품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짝퉁 피해는 미미하다”며 “무시하는 게 낫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중국 내 내수 규모가 국내 식품기업으로서는 최초로 1조 원을 돌파한 오리온조차 언급을 피한다. 오리온 관계자는 "짝퉁 식품을 발견한 사례는 확인된 바가 없다"며 "취재내용과 관련,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맛 시장 정착시켜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딱히 짝퉁을 근절할 방안은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물론 형식상 중국 식약청 및 경찰 당국과 공동 협력해 수사 압력을 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기간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짝퉁 업체들을 찾아내는 수고와 비용이 더 드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농심 고민호 연구소장은 '짝퉁 업체들이 따라할 수 없는 자체 고유의 맛'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신라면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티베이스 스프'를 자체 개발했다"며 "그 맛이 시장에 빠르게 정착하도록 한다면 소비자들이 짝퉁 식품을 한 입만 먹어도 분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베이징, 짝퉁식품 근절 신호탄 될까?

그렇다면 중국의 기존 ‘식품안전법’에서는 식품 안전을 무시한 생산자에게 어떤 처벌이 돌아갈까?

제9장 법률책임 제84조에 따르면 불법 생산자가 유통시킨 식품 및 식품첨가물 규모가 1만 위안 미만이면 2000위안에서 최고 5만 위안까지 벌금형에 처해진다. 만약 불법 유통 규모가 1만 위안 이상이면 그 금액의 5배 이상에서 최고 10배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동법 제86조에 따르면 생산자의 영업 정지 및 영업 허가증이 말소된다.

▲ 중국의 유명한 해바라기씨 과자 정품(왼쪽)과 짝퉁(오른쪽). 얼핏 보면 비슷한 한자를 교묘히 바꿔치기했다.

하지만 업계는 “식품 안전에 대한 중국의 법률은 강하지만 짝퉁 업체들을 찾아내 실제로 처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베이징에서 올 4월부터 짝퉁 식품 등 식품 안전관련 범죄를 저지른 업체는 영구 퇴출되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베이징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37차)에서 이 같은 내용의 ‘베이징시 식품안전조례’가 통과됐다. 형사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업계에서 영구 추방되는 것은 추가적인 조치인 것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이번 조치가 전국 대도시로 확산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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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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