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유리 천장’ 탓만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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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논설위원

‘드디어 이런 세상도 보게 되는구나.’

 국회에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여성 임원 비율을 5년 내 30%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제출됐다는 소식에 떠오른 소감이다. 여성가족부도 2017년까지 정부위원회 등 위촉직 위원의 여성 비율을 4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단다. 눈치 없는 척하며 조직에서 질기게 버텨온 보람에다 절묘한 타이밍에 감사의 염이 샘솟아 오를 지경이다. 잘만 버티면 공기업 여성 임원 채우기 붐이 민간 부문에 번질 즈음, ‘숫자 채우기용’으로라도 ‘별’ 한번 달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흥겹다. 그런데 이 소식에 모두 즐거운 반응은 아니다.

 벌써부터 8%대인 공기업 여성 임원 비율을 무슨 수로 30%로 끌어올리느냐며 걱정이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격한 반응도 나온다. 하긴 통계상 여성 고위직 숫자는 미미하다. 3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3.7%. 민간 부문에선 100대 기업 여성 임원은 1.5%, 중간관리자급 이상은 5.8%다. 5년 내 중간관리자급 ‘핏덩이’들까지 임원에 앉혀도 30%를 채우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대승적으로 환영한다. 별 따려는 욕심? 아니다. “세계 성장을 위한 부가 자원이 있다면, 그건 여성”이라고 지적했던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말처럼 이제 여성은 경제성장의 단서를 쥔 자원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적 위상은 무척 낮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조사한 성평등 순위에서 한국은 135개국 중 108위였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하다.

 최근 사법·행정고시 합격률 등에서 여성이 절반쯤 되니 외견상 여성의 지위는 화려하다. 한데 실상은 아프리카라는 것이다. 이런 괴리의 일부는 조직 안에서 만들어진다. 호탕하게 들어갔다고 순탄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아니다. 과장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잘나가다 순식간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여성들을 무수히 보았다. 출산·육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에서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도태되어 갔다. 그 결과가 현재의 초라한 성적이다. 여성 임원 쿼터제가 생긴다면 최소한 억울한 도태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조직 내 여성의 도태가 ‘유리 천장’ ‘남성들의 음모’ ‘조직의 성차별 관행’ 때문이기만 했을까? 관리자급으로 여성들과 일해본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먼저 여성인력 분포는 역포물선이라는 것. 아주 탁월하거나 아주 떨어지거나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정상분포곡선을 그리며 중간층이 두꺼운데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소통이 힘들고, 직장생활을 ‘자아 실현’으로 생각해 자기 원칙을 지킨다며 서슴없이 조직을 해치는 여성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통계는 없는 경험담이다. 내 경험을 덧붙이자면, 일은 수준 미달로 해놓고 열심히 일한 ‘과정의 아름다움’을 들이대는 여자 후배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지 마라. 잘하면 된다.” 여자 상사는 말이라도 해주지만, 남자 상사는 말은 삼키고 평가는 가혹해 뒤통수를 친다.

 언젠가 한 강연에서 여성 후배들에게 사회생활에서 생각할 것들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첫째, 지갑 속의 자기 사진과 책상 위의 거울을 버려라. 자기 얼굴 그만 들여다보고, 남의 얼굴을 보고, 남의 말을 듣고, 세상의 소리에 민감해져야 세상과 소통이 된다. 둘째, 욕먹는 일에 담담해져라. 착한 척하고 칭찬 들으려는 욕구에서 벗어나는 순간, 여성들의 능력은 배가 된다. 셋째, 미흡한 결과에 아름다운 과정이란 소용없다. 일이란 자기 만족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성과를 내줘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결과다.

 이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미덕’으로 학습해온 습성들을 배반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습성이 여성들의 사회적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진입장벽은 제도가 걷어줄 수 있지만, 성취는 진검승부로 결판난다. 자기에게 달렸다. 여성이 경제성장의 자원으로 부상한 시대, 1만 년 만에 맞는 기회의 시기다. 여성이 성공해야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