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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조림 만들며 배운 매몰비용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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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갈치조림을 했다. 무지하게 짜다. 양념 통을 닦은 후 설탕과 소금을 바꿔 넣은 탓이다. 다행히 두 토막만 넣고 시작했기에 두 토막 더 넣고 간을 맞췄다. 여전히 짜다. 남은 세 토막 다 넣었는데도 짜다. 익으면 간이 스며들겠지 하며 비싼 야채를 뭉텅 썰어 넣고 양념도 듬뿍 넣었다. 소금과 설탕. 부피에 비례한 농도 차이. 엄청나더라. 들통 가득한 갈치조림. 몽땅 버렸다.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과감히 버리고 다시 시작했으면 갈치 두 토막만 버릴 것을. 아깝다고 계속 넣다 망했다. 이런 바보 같은 걸 경제학 용어로 ‘sunk cost’라 한다더라. 뒤늦게 들어간 MBA 과정의 어떤 매력 있는 교수님한테서 배운 거다. ‘sink’의 과거분사를 써서 매몰비용이란 뜻. 이번 경우엔 갈치 두 토막이 ‘sunk cost’였던 거다.

 인간은 무모할 때가 참 많다. 잘못된 투자란 분석이 나왔어도, 그만둘 생각 않고 쓴 돈 아깝다고 계속 쏟아붓는다. 처음 투자한 1만원이 아깝다고 2만원, 3만원.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적을 바라면서.

 음악에는 재주가 하나도 없는, 중학교 동창생의 딸이 있다. 피아니스트를 만든다고 딸을 이리저리 끌고 레슨 다니며 돈을 퍼부어댔지만 결국 그 딸아이는 음악을 포기하고 지금은 결혼해서 애 키우며 잘 산다. 그 친구가 그러더라. 음악 시작하고 일 년 후. 안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였는데도 들인 돈 아까워 ‘언젠간 잘 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포기 못했던 거라는데. 결국은 집까지 날린 후에야 포기했단다. 잘못된 투자는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게 상책인 것을.

 국책사업에도 매몰비용을 떠올릴 때가 있다. 4대 강 사업 이후 수질이 더 나빠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강 중간의 대형 보 때문에 유량(流量)은 늘었지만 유속(流速)이 늦어진 게 문제다. 들어간 돈이 워낙 엄청나니 매몰비용 될까 겁난다. 다만 수질의 진짜 관건은 보가 아니라 강 주변 오염원을 얼마나 차단하는가에 달렸단다. 하수처리장 더 많이 짓고, 싱크대 물이라도 아껴 쓰면 되려나. 22조원의 생돈을 날리지 않으려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박근혜 당선인 ‘공약 지키기’도 걱정된다. 4대 복지공약을 위해 임기 5년 동안 16조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박 당선인의 입장과, 두 배 이상 들 거라는 전문가들의 판단. 물론 ‘문제를 풀려는 의지 없이 그저 과거 관행에 따르는’ 전문가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듣기 싫은 말일 줄 알면서도 어렵게 꺼낸 정부 부처들의 ‘대선 공약 이행이 어렵다’는 말. 박 당선인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과거에 들인 돈 때문에, 과거에 한 말 때문에, 고집부리며 시작했다가 5년 뒤, 또 근심거리 하나 더 얹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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