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자서전 쓰는 김지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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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은 일찍이 그의 '자화상'에서 '아비는 종이었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였다'고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이 명백한 한마디 없이는 나의 회상은 전체적으로 그 회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인 김지하씨(사진) 가 지난 9월부터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 연재하며 쓴 서언 중 일부다.

현재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에 칩거 중인 김씨는 10년 전 동아일보에 회고록을 쓰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시기를 건너지 못하고 중단한 바 있다.

"당시엔 엄밀히 말해서 가족사와 내 개인사의 진실은 커녕 최소한의 사실마저도 정면에서 온전하게 부딪치지 못한 채 금기의 장벽과 타협하고 말았다."

김씨는 현재 4.19가 일어난 해, 즉 그의 나이 스무살 때까지의 회고록을 완성해 둔 상태다. 여기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고 그 기억이 인간 김지하에 미친 영향이 새롭게 서술돼 있다.

이어질 2부와 3부는 20년을 묶음으로 해 그의 60년 인생 전부를 담아낼 예정이다. 한.일회담 반대, 민청학련 사건 등 1960~70년대 한국 근대화 과정의 굵직한 사건에서 91년 분신 정국 파동까지 그가 관여했던 모든 일을 다루게 된다.

"2권에 들어가면서 많이 힘들어.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는 것이지. 마치 자유 연상을 하는 것처럼 이번 회고록은 한편으로는 정신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김지하라는 현상에 대한 회상, 즉 어떤 의미가 생성하는 문학적 탐색으로 밀고가고자 해. 그것만이 온갖 형태의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봉인된 내 삶의 깊은 시간의 비밀이 변화 속에서 열릴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회고록의 제목 '모로 누운 돌부처'란 곧 "실패한 예언자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답지 않게 산 것, 너무 환상적인 생각에 치우쳐 있던 것,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91년 분신 정국에서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고 했던 그의 발언을 자기 인생을 갈라놓은 분기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좌파에게 버림받고 우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되지 않았던가.

"꼭 그런 것은 아니지. 회고록에도 나오겠지만 난 늘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었고. 그러나 내가 너무 날카롭게 쓴 것은 인정해. 등을 두드리며 얘기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자살하려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얘기해야 먹히는 것이거든."

그러나 그 후 그는 율려운동에 한 차례 뛰어들었던 것 말고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침묵의 이유에 대해 우회적으로 답했다.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걸 뿐이지. 뭔가 다른 새로운 힘의 결집이 이뤄질 것 같아, 그들에게는. 그리고 삼김(三金) 정치에 대해서는 원래 기대한 게 없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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