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마라톤] 5Km 여자부 1위 초등생 손예슬

중앙일보

입력

"황영조·이봉주 오빠와 같은 훌륭한 마라톤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난 4일 벌어진 중앙일보 서울국제하프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부문(일반부) 여자 5㎞에서 초등학생이 우승을 차지하자 "얘가 누구냐"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꼬마 숙녀' 손예슬(서울 유현초6)양. 예슬이의 꿈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국내 육상 장거리와 마라톤 기록은 자신의 발로 모두 갈아치우고 싶다는 야심찬 포부도 갖고 있다. 이런 원대한 꿈과는 달리 인터뷰에 응한 예슬이의 모습은 아직은 운동 선수라기보다 천진난만한 어린 초등학생이었다. 다른 애들처럼 god와 핑클을 좋아하고 틈만 나면 컴퓨터 오락을 즐긴다. 키도 1m39㎝로 작은 데다 몸무게도 28㎏밖에 나가지 않는, 동네 어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린 아이였다. 여린 모습에서 피를 말리는 고통이 따르는 예비 마라토너의 인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느냐"고 묻자 예슬이는 "달릴 때 별로 힘든 것을 몰라요"라고 태연히 말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고 앞서 나갈 때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한다. 달리기의 맛을 들여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까.

"키가 작아 어른들하고 달릴 때 힘이 부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보폭을 일부러 크게 해서 뛰면 돼요"라며 나름대로 처방을 내놓는다.

예슬이는 이번 중앙마라톤 5㎞ 여자부에 참가한 3천3백18명 중 1위로 골인했고, 남자 참가자까지 합한 7천7백27명 중에서도 6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이날 손양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육상인들은 "지구력과 심폐기능이 타고난 마라토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직 몸동작이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으면 대성이 기대된다는 설명과 함께.

엄밀히 말해 예슬이는 아직 마라토너가 아니다. 물론 등록선수도 아니다. 체계적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학교에 운동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 코치에게서 지도받은 적이 없다.

굳이 스승을 대라면 아버지 손호석(42.자영업)씨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버지도 마라톤 선수 출신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취미삼아, 건강관리 차원에서 달리기를 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린 딸을 위해 손씨는 꽤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마라톤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내 호흡법이며 주법 등을 나름대로 파악해 딸에게 전수해오고 있다.

손씨는 달리기를 할 때 꼭 딸을 데리고 다닌다. "예슬이가 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참 잘하더라고요. 운동장 트랙을 도는 오래달리기를 하는 것을 보면 친구들을 한바퀴 이상 따돌리고 늘 1등을 하곤 했어요."

그러던 지난해 가을 중앙일보에서 중앙마라톤 개최 기사를 보게 됐고 부녀가 의기투합해 처음으로 중앙마라톤에 도전했다. 그 때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며 공개하기를 꺼렸다.

그러다 지난 2월 경기도 하남시 하프마라톤에서 예슬이가 3등을 했다. 이어 4월 전주~군산간 벚꽃마라톤 하프코스에서 처음으로 1등에 올랐다. 이후 언론사 주최 마라톤대회에서 꾸준히 1등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 손씨도 각종 대회에 딸과 함께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은 딸만 못한 것 같다. 4~5위권에서 맴돈다며 얼굴을 붉힌다.

예슬이에게 "마라톤(하프) 레이스 도중 힘들면 포기하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예슬이는 "15㎞지점이 제일 힘들다. 그러나 구경나온 사람들이 응원해 주면 힘이 솟아나고, 또 가족들 생각하면 버틸 만하다"고 말했다.

이번 중앙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난 후 예슬이는 주변 사람들한테는 스타가 됐다고 으쓱해했다. 학교에 가니까 담임선생님이 "정말 잘 뛰었다. 자랑스럽다"고 칭찬해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강북교육청에서도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훌륭한 자녀를 둬서 좋겠다. 좋은 선수로 키워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 딸을 둔 아버지이지만 딸의 장래를 놓고 한 때 행복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공부와 운동의 갈림길에서다.

그러나 워낙 마라톤에 소질이 있는 데다 본인도 운동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라톤을 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중앙마라톤 우승 후 예슬이를 데려가겠다는 중학교도 여럿 나타났다. 모두들 훌륭한 마라토너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손씨는 "예슬이를 좋은 코치 밑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다음 중앙마라톤에서는 정식 선수로 우승을 시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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