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금융실명제법 보완] 계좌 함부로 못보게 잠금장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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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마련한 금융실명제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개인의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무(無)영장 계좌추적,국세청 등의 광범위한 계좌추적 행위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도다.

국회의석 과반수(1백37석)에 육박하는 한나라당(1백36석)은 자민련(15석)과 공조해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 법안 내용과 의미=검찰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계좌추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형사소송법 1백99조(수사를 위해 정부기관.단체 등에 협조의뢰 가능) 등을 내세워 금융감독원에 계좌추적을 의뢰해 왔다. 금감원은 영장없이 계좌를 열어보는 권한을 갖고 있다. 검찰이 이같은 금감원 권한에 편승해왔던 셈이다. 법안은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조항(4조1항)에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한 검찰의 편법적인 계좌추적 의뢰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넣었다.

합법적인 계좌추적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했다. 추적을 하더라도 명의인(名義人)과 거래기간을 정해 그 범위 안에서 실시토록 한 것이다. 그동안 성행해온 포괄적인 계좌추적을 막겠다는 뜻이다. 또 명의인과 직접 금융거래를 하지 않은 사람의 계좌는 열어보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국세청 등의 광범위한 연결계좌 추적은 불가능하게 된다.

한나라당은 책임소재 규명에 큰 비중을 두었다.금융기관에 거래정보를 요구하는 기관의 담당자, 책임자의 이름과 직책을 재경부 장관이 정한 양식에 기록토록하고, 그것을 7년동안 보관토록 한 게 그 예다. 당 관계자는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 관계자 모두 정권이 바뀌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정보요원이 법을 위반할 땐 가중처벌(7년 이하 징역)을 받도록 했다. 이는 계좌추적의 정치적 악용을 막기 위함이란 설명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정치적 목적의 불법 계좌추적'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현재는 계좌추적 사실을 정해진 양식 없이 기록하고 있으며, 보관기간도 3년이다. 국가기관의 계좌추적에 대한 국회의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내용도 눈에 띈다. 계좌추적에 대한 재경부 장관의 분기별 국회 보고 의무화와 국회의 자료 열람권이 그것이다. 당 관계자는 "우리는 야당의원 거의 대부분이 본인과 주변인사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받아왔다고 보고 있으며, 의원들의 대책마련 호소가 꼬리를 물었다"고 이 조항의 신설배경을 설명했다.

◇ 여야 논란=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제2정조위원장은 "현행 실명제법은 무분별한 계좌추적으로 유명무실화한만큼 비밀보장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정책위의장도 "편법 계좌추적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한나라당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강운태(姜雲太)제2정조위원장은 "사생활보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회 보고 의무 등은 문제가 있다"며 "검찰.국세청 등이 이 법안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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