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지키는 사람들] 중앙시장 40번 과일 노점 김용복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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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씨는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장사했다. 장 보러 나온 손님 중에 눈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많다.

“여름 장사가 아무래도 낫지요. 요즘 같은 날씨엔 과일이 얼어버리기 일쑤거든. 팔지 못하고 버릴 때가 많아 속상하지.”

 중앙시장 40번 과일 노점 김용복(73) 할아버지는 부지런히 과일을 바구니에 옮겨 담기를 반복했다. 생물이라 제 때 못 팔면 버려야 하는 게 과일인데 연일 이어지는 영하의 날씨가 원망스럽다. 옷을 몇 겹을 껴입고 있어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그나마 떠들썩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훈기가 도는 주말장사가 제일 신이 난다고 했다.

 충북 보은이 고향이라는 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는 온양이며 병천을 떠돌며 외장(外場)을 다녔다. 몇 차례 옷 가게를 하기도 했는데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다. 그나마 과일 장사가 자본이 적게 들어 시작했는데 장옥이 뜯긴 중앙시장에 노점을 시작한지 벌써 40년이다.

 철 따라 바뀌는 계절 과일들을 취급하고 있다. 새벽이면 직산 청과시장에서 경매로 과일을 떼어 와 노점을 펼친다. 날씨가 사나워 좋은 과일을 구하기도 힘든 계절이다. 김 할아버지의 노점은 주차장과 가까운 중간 골목이다. 중간골목은 신선식품이 많은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과일은 크게 경기를 타지 않고 꾸준히 나가는 편이다.

 소담스럽게 담긴 과일 소쿠리마다 3000원부터 5000원까지 가격표가 붙여져 있다. 대봉 5~6개가 담긴 소쿠리가 5000원, 수북이 담긴 귤 한 소쿠리가 3000원이다. 여름에 포도·수박·복숭아가 잘 나가고 요즘에는 감·석류·귤·사과가 제철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다 보니 오가며 눈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이 많다. 김씨의 노점은 시장 초입이라 특별한 단골보다는 뜨내기손님이 오히려 많은 편이다. 과일 맛이야 직접 맛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겉모양이 흠집 없이 매끈하고 저렴해야 잘 나간다. 처음엔 비싸다며 돌아섰다가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후 다시 오는 손님들이 많다. 매서운 한파로 시장에 오는 손님들도 점점 뜸해진다. 지붕 공사로 눈·비를 피할 수 있어 한결 나아졌지만 겨울장사는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남산 아래서 40년 넘게 살았어요. 아침이면 8시반에 나와 좌판을 깔고 저녁 8시면 거두고 들어가는 생활을 반평생 해왔지. 4형제 모두 장가보내고 이제 할머니랑 둘이서 슬슬 오가며 일합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 뭐 있겠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과일 팔아야죠.” 장갑 낀 손으로 검정 비닐봉지를 비빈 후 사과 소쿠리를 쏟아 손님에게 건네는 김씨의 손이 다시 분주해졌다. 문의 010-7517-0933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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