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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리뷰] 박하사탕- 로즈버드를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들어가면서

콜렉터라는 의미로 영화 매니아의 의미를 국한시켜 볼 때, 인터넷과 DVD의 출현은 매니아층을 두텁게 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4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비콜렉터라 함은 곧 LD소장가를 의미하였는데 (자신이 원하는 라이센스 비디오테잎을 구하기 위하여 청계천과 문닫는 비디오가게를 찾아 발로 뛰며 모으신 매니아분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크라테리언을 비롯한 좋은 판본의 영화들이 DVD로 제대로 나오리라고 예측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LD타이틀 가격과 원하는 타이틀구입의 어려움등으로 그리 많지 않았던 콜렉터의 계층이 인터넷과 DVD의 출현으로 어려움이 해소됨으로 인하여 급속도로 두터워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마치 LP를 CD가 완전히 대체하였듯이, 그리고 CD가 대여용이 아닌 소장용의 미디어였던 것처럼, DVD시장은 렌탈보다는 셀스루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 콜렉터 계층은 DVD PLAYER의 보급과 비례하여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몇몇분들이 플레이어 구입이전부터 DVD타이틀을 구입하고, 일정수량 이상되는 싯점에서 플레이어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과거 LD와 비교할 때 비교적 염가의 가격과 사용의 편리성,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한두장의 타이틀에 풍부한 서플먼트와 더 깨끗해진 화질, 그리고 러닝타임내내 감독의 코맨터리까지 곁들여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한 서두를 쓰게 된 것은 오늘 제가 소개코자 하는 DVD타이틀이 '박하사탕'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박하사탕'은 위에서 열거한 장점을 갖춘 DVD로서는 소개할 점이 많지 않습니다. 전무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리 예쁜 커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커버종이는 좌우가 조금 모 지라게 제작되어 케이스의 검은색이 좌우로 들어날 정도입니다.) 그 흔한 속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서 발매된 DVD가 1.66:1의 화면비로 감독과 설경구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여 한국판 DVD는 4:3의 화면비에 자랑거리로 "국내 최초 한국어/영어/일어 3개국어 자막처리"를 내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반칙왕'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제작되어 DVD판매면에서나 추천도면에서 DVD화된 국내영화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결코 영화적인 면에서는 떨어진다고 할 수 없는 '박하사탕' DVD의 소장율이나 추천비율이 반칙왕 DVD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DVD를 제작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점들을 시사해줍니다.

'박하사탕' DVD에는 비록 아쉬운 점들이 많지만, 'DVD는 미워하되 영화는 미워하면 안된다' 그리고 'DVD타이틀 구매의 기준은 궁극적으로 음질이나 화질이 아닌 영화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 때문에 '박하사탕'의 DVD리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하지만 부끄럽게도 이 타이틀은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닙니다. --;)

■ 박하사탕 거꾸로 보기

'박하사탕'의 DVD리뷰를 한다는 것은 영화리뷰를 적는 것과 똑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말씀 드린데로 이 작품은 DVD로부터 유저가 향유할 수 있는 고기능을 무시하고 비디오테잎을 조금 더 편하게 보는 형태의 저기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많지 않은 7개의 챕터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깨끗한 정지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속 검색과 되돌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여전히 비디오테잎보다 편리하긴 합니다.)

'박하사탕'은 최근영화인 메멘토와 41년 오손 웰스의 영화인 시민케인을 합친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메멘토가 박음질식 역순구조를 가지고서 레오나드가 영화 오프닝과 함께 행한 살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영화의 흐름과 함께 점차 알려주며 마지막 반전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면 박하사탕은 김영호의 죽음이 왜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지를 시간의 역순과 함께 점점 더 애절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시민케인이 케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어 로즈버드를 찾아가는 구조라면, 박하사탕은 김영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어 박하사탕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거꾸로 (시간의 흐름대로) 돌리게 될 경우 메멘토는 단순한 드라마에 지나지 않게 되나 박하사탕은 거꾸 돌린다 하여도 그 감동은 여전할 영화입니다. 시민케인이 어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박하사탕은 우리와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간 한 한국인의 좌절을 다룬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평등하다던가, 존엄성이 평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죽음앞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죽는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기직전, 불교용어적 의미에서의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평생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란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생각이 브레인스톰이나 아메리칸뷰티 혹은 아마게돈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을 볼 때, 무한한 공감대를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속이고 세상 사람들 역시 왜곡된 형태로 자신을 인식하였다 할지라도 결국 죽음직전의 찰나, 진리를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는 가정입니다. (과연 재벌총수가 죽기직전의 찰나에 자신의 삶에 행복감을 느낄까요?)

영호가 귀여리 철교위에서 '나 이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것과 동시에 영화는 거꾸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영호가 사고로 죽었을 것이란 걸 압니다. 그는 죽기직전 찰나의 순간동안 자신의 과거 20년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챕터 #1 '야유회'와 챕터 #7 '소풍'에서 이들이 부른 노래는 '나 어떡해'였으며 영호는 이 두챕터에서 모두 귀여리 철교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게 됩니다.

오늘의 DVD리뷰는 영화와는 다르게 시간흐름대로 영호의 20년 생애를 챕터별로 살펴볼려고 합니다.

■ Chapter #7 [소풍]


영화의 마지막챕터, 하지만 영호가 유일하게 박하사탕과 일체화되어있었던 시점을 79년 가을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대통령 서거로부터 잠시나마 누렸었던 서울의 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순임이 건네주는 박하사탕을 영호는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순임의 일은 공장에서 하룻동안 박하사탕 천개싸기였습니다.

■ Chapter #6 [면회]


순임이 편지와 함께 보내온 박하사탕을 영호는 모아왔지만, 무참하게 짓밟히고 맙니다. 박하사탕은 짓이겨지지만, 영호는 아직까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광주로 가는 군용트럭속에서 이들은 '용사의 다짐'을 부릅니다. 영호의 레퍼토리가 어쩔수 없이 바뀌어 갑니다.


유탄에 다리를 맞아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영호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처음에 순임의 모습을 띄었다가 나중에 한 여학생으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장면은 영호가 변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장면을 깃점으로 박하사탕과 거리가 멀어지며 20년뒤의 죽음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쏘아진 총알은 영호를 되돌릴 수 없는 길로 치닫게 합니다. 박하사탕을 좋아하는 노동자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X냄새를 맡아야 했던 고문형사로의 변화. 이 모든 것의 출발에는 광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속 영호의 인생에는 항상 기차가 함께 있습니다. (그가 변화하는 이 장소에도 기차가 있습니다.)

■ Chapter #5 [기도]


첫고문을 영호는 성공적으로 수행해냅니다. 마치 그것이 타고난 재질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별명은 어느새 무서운 '개'가 되어버립니다.


자신을 위하여 여러 달 모은 돈으로 사온 카메라를 다시금 되돌려주는 영호. 순임을 떠나보낸 뒤 영호는 광주의 상흔으로 다리를 절뚝입니다.

영호는 이외의 챕터에서도 계속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순임은 박하사탕과 동의어입니다. 그러한 순임을 떠나보낸 뒤, 영호는 괴로워합니다. 구령조정 3회실시와 함께 "뒤로 돌아"를 외치는 영호.

영호는 여전히 뒤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영호와의 잠자리전 의미없는 기도 (주기도문)을 외우는 홍자.

챕터중간마다 등장하는 기차는 자세히 보면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선로위의 나비의 움직임이라던가 차의 이동방향, 그리고 아이들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가 있죠. 박하사탕에서의 기차는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Chapter #4 [고백]


자신의 별명대로 '개'의 모습을 박명식군에게 짓고 있는 영호. 박종철군은 이와 같은 고문폭행으로 87년 죽었었죠.


■ Chapter #3 [삶은 아름답다]


영호는 형사일을 그만두고 가구점을 하고 있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갈 정도로 사정도 좋아졌죠. 그런데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하였던가요? 아내는 자동차 운전강사와 바람을 피우고, 영호는 사무실 여직원과 바람을 피웁니다.


집들이에서 영호는 개를 못살게 괴롭힙니다. 아내가 가로막지만 영호는 이야기하죠

영호: "난 개 싫어!"
아내: "왜?"
영호: "개니까"
아내: "그렇게 때릴꺼면 죽여버려!"

영호가 개를 못살게 구는 것은 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지불식중에 느끼고 있는 그가 개를 차는 행위는 곧 자기자신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견랑전설과 인랑이 생각이 나는군요.

■ Chapter #2 [사진기]


20년만에 순임과 재회한 영호.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는 순임처럼 영호가 다시금 박하사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새로운 박하사탕을 사다가 다시금 담아도 순임은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순임이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기속의 필름을 영호는 뽑아버립니다.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

■ Chapter #1 [야유회]


영화 첫 챕터의 마지막 장면이자 시간순서상으로도 마지막 장면입니다. 영호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어했을까요?

영호가 지킬려고 했었던 순임의 박하사탕을 모두 다 잃어 버리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몇 개는 간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챕터 #1의 첫장면과 챕터 #7의 마지막장면입니다. 20년후와 20년전의 같은장소에서 같은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는 영호. 하지만 같은 인물인 영호가 흘리고 있는 눈물의 의미는 분명 다르겠죠.

어쨌든 영호는 달려오는 기차앞에서 바랬던 것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 비록 영화의 형태이지만, 관객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좌측의 사진에선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지만, 우측의 모습에선 안도감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선전영화를 본 것처럼, 좌측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말입니다.

■ LIFE IS BEAUTIFUL ?

박하사탕이 괜찮은 것은, 이 영화가 현재의 모습에서부터 광주를 거쳐 우리나라 근대화의 끝자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 사내의 변해왔던 모습을 (변해가는 모습이 아닌) 그려낸 우리의 일기이기 때문입니다. 김영호를 통하여 과거 한국의 20년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감독의 이야기능력이 탁월합니다.

세상에 의하여 절름발이가 된 주인공이 또다시 세상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그 상호작용속에서도 상황은 나아진 듯 보입니다만, 예전의 상흔으로 말미암아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절뚝거리고 있습니다. 영호가 광주사태를 만나지 않았었다면 적어도 죽음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광주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영호는 가해자이자 또한 피해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영호처럼 자신이 꿈꿔왔던 생활과는 (혹은 순수했던 시절로부터) 어느정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학생시절에는 부담없이 자신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진리를 인생의 최고목표에 두기를 서슴치 않지만, 어느순간부터 그것을 직시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꿈꾸었었는지, 무엇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게 되죠.

사회적 무의식이란 것이 각박하고 왜곡된 세상에서 적응하며 생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영호의 삶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차라리 이러한 것을 인식치 못하는 백치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나마 문득문득 79년도의 박하사탕을 생각한다는데에 있습니다. 술과 담배의 힘을 빌었을 때에 비로소 자신에게 진지해지고 솔직해지지만 다음날 또다시 87년이나 94년의 영호로 되돌아 오듯이, 우리역시 영호처럼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대부분이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하여 견디다 못하여 죽음을 택한 영호는 어쩌면 마지막순간에 우리보다 더 순수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아름다운게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겠죠, 세상이 허락한다면 말입니다.

고문을 받기전에 고백을 하여야겠네요. 사실 너무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 극장서 박하사탕을 보았을 때, 기대치만큼의 감동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설경구의 김영호연기가 스토리를 압도할 정도로 좋았기 때문일까요? (그런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음인지 DVD로 영화를 다시보니 극장서 보지 못했던 상징들과 복선들을 읽을수가 있더군요. 챕터 중간중간을 먼저 본다는 것이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끝부터 처음까지) 두 번을 연달아 보고 말았습니다. 극장서 저처럼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 못한 분들은 DVD나 비디오로 다시한번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이제 왜 박사모란 모임이 생길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박하사탕은 한국서 2000년에 최초로 개봉되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흑수선이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최초의 한국영화 개막작이기도 했었죠. 칸영화제의 감독주간영화로 출품되기도 하였으며 그해 키네마순보의 해외영화부문 10위에 랭크되기도 하였었습니다.

▶ DVD사양
. 제 작 사 : 알토미디어
. 지역코드: All (0)
. 화면비율: 4:3
. 사 운 드 : DD 2.0
. 상영시간: 127분
. 자 막: 한국어, 영어, 일어지원
. 서플먼트:
- 영화 시놉시스 (텍스트)
- 감독 및 주요배우 프로필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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