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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산의 「육석」시동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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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항선 연변의 촌락들은 괴어 있는 웅덩이 같다. 싱싱한 바람이라고는 없다. 몇 해를 묵은 총선벽보가 진흙 벽에 고즈넉이 남아 있다. 자연마저 수런거리는 풍경은 아니다. 기차를 내려 읍내로 간다. 20분 거리에 먼지가 대단하다. 『예산은 야당 촌이라서...』나중에야 어느 시인의 농담을 듣고 실소했다. 일요일에도 문화원은 활짝 열려 있었다. 【예산에서·최종율 기자】
책상 돌, 연탄난로 하나, 나무「벤치」하나, 그리고 의자 두어 개로 조그만 방은 가득 찼다. 예산 문화원의 무보수 사무국장인 박병하씨가 제자리에, 한성기씨가 한쪽에 비켜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참인 듯 청년 몇이 앉았다 일어선다. 그 날은 일요일 오후였다. 요일이 없는 문화원은 이처럼 늘 문화「살롱」의 구실을 한다. 예산문인들의 동인지인 『육석』도 바로 이곳에서 편집된 것이었다.
「육석」은 워낙 4집까지 나왔었다. 5년 전 그것이 정간된 후, 작년가을 5집을 발간한 것이다. 그때의 체취는 지금 남아있지 않다. 옛 동인들이 대부분 향리를 떠난 때문이다. 향수를 아끼는 시인은 많아도 향리를 애틋이 지키려는 문인은 드물다. 대개는 도회지에서 문명을 얻고 그곳에 머물러 생활하기를 원한다. 창작생활의 무슨 불문율 같은, 그 정석에 거슬러 생활하는 문인은 하나, 둘 손에 꼽기도 힘든다.
「괴어있는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지방의 문인들이다. 「육석」제5집도 말하자면 그런 문인들의 호흡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후기」를 읽어본다.
『현실참여라기보다 도피랄까? 6, 7년의 공백 속에 젊은 고뇌들의 궁기낀 대화가 어떠한 양상으로 반응될지 두렵기만 하다』
작년 가을 예산문인들의 시화전이 열렸을 때 5백 여명의 시객이 몰려들었다. 한성기씨의 개인시집은 2천 여권이나 팔렸다. 50대의 주부시인인 서창남 여사나 중학교장인 김붕한씨는 지방에서 연거푸 두 권의 자작시집을 발간했다.
「육석」의 동인가운데는 현직 경찰서장인 박순도씨나 양조장 주인인 이상호씨도 포함되어 있다. 박병하씨가 내보이는 예산의 시인명부 속엔 모두 26명의 이름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무엇인가 문학에의 열정 같은 것에 넘쳐 있는 사람들이다. 한번도 원고청탁이라고는 받아본 일이 없는 무명의 시인들이다. 그러나 쉽게 체념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들 나름으로 다방의 벽에 혹은 문화원의 한 모퉁이에 작품들을 걸어놓고 만족한다.
『나는 한낱 어항 속 인물 언제고 바깥세상이 그리워 푸드둥 날아가고픈 심경』
올해 48세의 민중당 당원이기도 한 박창식씨는 시화전을 벌인 자리에 이런 작품을 내 걸었다. 대개의 「심경」들은 이런 취향에 젖어있다.
『나직이 하늘을 향해서, 그리고 먼데 도시를 향해서』 한성기씨의 시 한 귀절. 지금 그는 지방신문의 지국을 경영하며 근근 생활하고 있다.
서울의 많은 문우를 두고도 그는 묻혀 산다. 『삶은 낙망 절망...』이라는 어둡디 어두운 누구의 작품도 있다. 출석부를 부르다가 문득 어느 아이의 얼굴에서 어두운 빛을 발견하고 『담임교사는 땅의 그늘을 읽는다. 눈물을 읽는다』는 교장의 시 한편.
대개는 생활의 현실이 창작의 동기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결같은 단조로움이며 피곤감 마저 주는가보다. 작품의 내밀한 흐름은 그것을 얘기한다.
『도무지 자극이 없습니다. 불감 속에 사니까요. 침전과 폐쇄와...』 한성기씨는 이런 말을 하다 말고 「육석」은 『살랑거리는 자극』이라고 말한다.
「육석」의 뜻은? 동인들은 그 명칭에 불만들이다. 그러나 향토의 조그만 전통이나마 아끼고 싶어, 옛 이름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연」과 「강」의 뜻이란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주의 원리」라고 말하지만 흥미 없는 대화라는 표정들이다.
그들은 곧 다른 명칭으로 동인지를 엮어낼 셈을 하고 있다. 비용은 찬조금이 80%를 차지한다. 그래선지 문학지에 걸맞지 않게 「외과의원」에, 무슨 다방에, 토지개량조합 등 잡다한 광고가 첫「페이지」부터 들이찼다.
『그저 부조리한 제도에서 탈피 구를 찾는 현대의 지성들이 보다 나은 차원을 향해 무수히 외치고 있음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인상적인 후기의 맺음이다.

<동인명단>
한성기 서창남 이희철 김붕한 박병하 김기학 박창식 한경구 배태인 이재인 박세춘(이상 동인지에 작품을 낸 사람) 박순도 이상호 김희수 이상숙 이항복 이화영 최형도 신영숙 최창호 이건영 김유태 안종갑 김용운 이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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