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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능력 있나, 겸손한가, 같이 일해 봤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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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03면

국회사진기자단

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명단은 ‘박근혜표 인사’의 전형을 보여줬다. 친박 정치인은 배제하고 자신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할 전문가들을 대거 기용했다. 이들 상당수는 경선이나 대선 과정을 도왔던 인물들로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쓰던 사람을 또 쓰고, 가급적 실무에 밝은 인사들을 선호해온 용인술이 재연됐다.
하지만 박 당선인과의 인연은커녕 캠프를 드나든 이력조차 없는 인물들도 발탁돼 본인들조차 어리둥절해하는 파격도 보여줬다. 이런 ‘깜짝 인사’는 특정인이나 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박 당선인 특유의 견제술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인물 검증은 극소수의 보좌진에게 맡기고 최종 결정은 본인이 직접 내리는 보안인사도 여전했다. 박 당선인은 다만 최종 낙점이 어려운 경우엔 주변의 믿을 만한 인사들에게 평판을 알아보는 과정을 거쳤다고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전했다. 이때 박 당선인이 관심 깊게 질문한 건 전문성과 능력이 있는지 겸손한 사람인지 직접 데리고 일해본 사람이었는지였다고 한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 명단서 드러난 '박근혜 인사 스타일'

어릴 때부터 알아온 인사
최성재 고용·복지 분과 간사는 인수위 간사 가운데 10대 시절의 박 당선인과 만나 인연을 쌓은 유일한 인물이다. 최 간사는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서울대에 세운 기숙사 ‘정영사(正英舍)’ 1기생이다. 이듬해 2, 3학년 엘리트 학생 40명만 수용하는 정영사에서 4학년을 맞은 최 간사는 정운찬 전 총리 등 동기들과 기숙사 증축 모금운동을 벌였다. 형편이 어려운 4학년생들이 정영사에 잔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 딱한 소식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이 국고를 지원해 최 간사와 동기들은 계속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최 간사는 5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이 일을 계기로 정영사 출신들이 1년에 한두 번씩 청와대에 인사하러 갔다”며 “육영수 여사와 박 당선인이 우리를 맞아줘 식사를 같이 한 적이있다”고 전했다. 이어 75~76년 정영사 동문회장을 맡게 된 최 간사는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 당선인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이런 최 간사가 박 당선인 캠프에 뛰어든 건 2010년 박 당선인이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에 앞장선 것이 계기가 됐다. 박 당선인이 복지에 전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 최 간사는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과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들어가 박 당선인의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함께 일하면서 검증을 통과한 인사
김장수(전 국방부 장관) 외교국방통일 간사도 박 당선인과 밤늦게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긴밀한 사이다. 김 간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선인은 나와 가치관이 비슷하다. 늦은 시간이면 문자를 보내서 이따 연락 달라고 얘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18대 국회에서 전작권 전환 등 박 당선인이 궁금해하는 안보 현안에 대해 조언해주면서 박 당선인의 마음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박효종(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정무분과 간사는 박 당선인이 2011년 말 총선을 앞두고 출범시킨 비상대책위원회에 들어오면서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선 “보수적인 국가관과 함께 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이 낙점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제자는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나갈 때 아들딸뻘 제자들의 신발을 손수 꺼내줘 제자들이 당황할 정도며 옷도 같은 양복을 10년째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3일 미국 휴스턴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외동딸 지영(34)씨의 출산을 지켜보러 3주 일정으로 방미했다가 4일 인선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곽병선 교육과학분과 간사는 2006년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권주자로 부상했을 당시 그의 자문그룹에 참여했다가 이듬해인 2007년 한나라당(당시) 경선을 앞둔 박근혜 캠프로 말을 갈아탔다. 이후 박 당선인의 교육정책 자문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곽 간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당선인이 직접 인수위 간사를 제안해와 응했다”면서 “수능제도는 시대착오적 암기교육을 온존시키는 주범인 만큼 박근혜 정부 5년간 (수능 폐지를 위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마련하고 선행교육을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성걸 경제 1간사는 완벽주의적인 일처리가 특징이다. 그가 제2차관을 지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작은 것까지 메모하고, 보고받을 때도 디테일을 꼼꼼히 파고들어 아랫사람들이 진땀을 흘리곤 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서 박 당선인과 같은 기획재정위에 소속되면서 박 당선인의 인사리스트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료는 “박 당선인은 상임위에 나가면 발언하는 의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전문성이 돋보이는 발언을 해온 류 의원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재 경제 2간사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시궁창에 거꾸로 처박아도 살아남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6급 특채로 관직에 입문해 중소기업청장까지 오른 뒤 19대 국회에 새누리당 의원으로 진출했다. 청장 시절 중소기업 상속세 감면제를 관철시키는 등 중소기업 정책에 역량을 보인 점이 박 당선인의 눈에 들었을 것이라고 새누리당 관계자는 풀이했다. 이 간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선인이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만들려는 뜻에 따라 심부름꾼으로 쓰기 위해 간사를 시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 1분과의 홍기택(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인수위원은 박 당선인과 서강대 동기(70학번)였음에도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8년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박 당선인을 위해 만든 ‘과외 공부 모임’에 들어가면서 인연을 맺었다. 2010년 국가미래연구원에 합류해 금융 정책을 조언해왔다. 홍 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내(전성빈 서강대 교수)가 박 당선인과 친분이 있어 내가 인수위원이 됐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연 없지만 능력·평판으로 깜짝 발탁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분과 간사는 박 당선인과 개인적 인연이 없고 캠프에서 일한 경력도 없는 깜짝 인사의 전형이다. 그는 성균관대 4학년 재학 당시 행시(23회)에 합격한 직후 미국에 유학 가 학자로 변신했다. 이런 그의 발탁엔 행시 동기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박 당선인의 과외공부모임 멤버인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의 추천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유 간사는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면서 “어떤 얘기를 해도 오해를 낳을 수 있어 지금은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유 간사가 보수단체인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면서 문제를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유 간사는 “순수한 시민단체에서 학자로서 행정 일을 1~2년 맡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혜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간사도 박 당선인이 4일 인선 발표 직전까지 적임자를 찾던 끝에 생면부지의 전문가를 낙점한 깜짝인사로 알려졌다. 89년 부산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변호사 개업을 한 그는 남편이 구남수 부산지법 수석 부장판사이고, 오빠도 부산에서 활동 중인 이문성 변호사다. 이 간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당선인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전혀 없어 어떻게 임명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부산시당 공천위원으로 활동했지만 박 당선인은 TV로만 접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들은 그를 “말수 적고 조용한 사람” “나이 많은 편이지만 젊은 남자 동기들과 잘 어울린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 간사는 인수위에서 검찰개혁의 틀을 만들 것으로 전망돼 검찰ㆍ경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 간사가 검찰과 연관이 없는 신선한 인물이라 낙점된 듯하다”고 관측했다. 이 간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6일 첫 분과 모임 뒤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여성문화 분과에서 문화정책을 담당할 모철민 간사도 박 당선인과의 인연 없이 콘텐트만으로 낙점된 인사로 알려졌다. 81년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거쳐 지난해 4월 예술의전당 사장에 임명됐다. 전당 대관료를 인하하고 고가 티켓을 없애는 등 개혁을 주도해온 모 사장은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당선인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인수위원에 임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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