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월요일엔 돈가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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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30면

민주주의는 월요일의 돈가스다. 나는 돈가스를 좋아한다. 튀긴 빵가루의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표면과 씹을 때 이와 잇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하고 두툼한 육질. 처음으로 돈가스를 먹을 때 나는 만일 행복이란 게 있다면 이런 두툼함과 바삭바삭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 팀장, 윤 과장, 장 주임 그리고 이 주임. e-biz팀 네 사람은 주로 함께 점심을 먹는다. 4는 좋은 숫자다. 네 명은 식당에서 가장 환영받는 손님이다. 그들은 4인용 테이블을 꽉 채울 테니까. 점심 독신자인 나는 요즘 그들 무리에 끼여 밥을 먹는다. 5는 애매한 숫자다. 차라리 2나 3은 괜찮지만 그 둘을 합친 5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바쁜 점심 시간에 혼자 식당에 들어온 손님처럼 난감한 인원이다. 5는 4+1이니까. 4인용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어도 계속 기다려야 하는 4는 일제히 1을 노려본다.
그나마 식당에 들어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인원이 많고 각자 개성이 강하니 그날의 메뉴를 골라 식당을 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개성은 곧 식성이다. 누구는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고 누구는 풀 냄새에 인상을 쓰고 누구는 기름진 음식은 별로이고 누구는 생선이라면 질색한다. 게다가 어제는 괜찮다고 말했던 음식을 오늘은 못 먹겠다고 고개를 젓고 내일은 꼭 먹자고 고집을 부린다. 민주주의란 시끄럽고 불편하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주임은 돈가스를 좋아한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그는 일 년 365일 세 끼 식단을 돈가스로만 차려도 “잘 먹겠습니다” 하면서 포크를 들 것 같은 그런 사람이다. 반면 생선은 쳐다보지도 못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좋아하는 생태탕이나 알탕을 단 한 번도 먹지 못했다. 점심 때 무엇을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 때문에 다들 신경이 예민해지고 업무에까지 영향을 끼치자 누군가 민주적인 해결책을 제안했다. 제비를 뽑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사람 각자의 요일을 정하고 그날은 그 사람이 먹고 싶어하는 걸 무조건 따르기로 말이다. 모두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며 찬성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었느냐고? 천만에.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주임은 월요일을 뽑았고 그에게는 하루의 권리가 있으므로 우리는 매주 월요일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어야 한다. 다들 돈가스를 좋아했다. 문제는 이 주임만큼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딱 하루 그것도 점심으로 한 끼도 돈가스를 먹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다. 일요일 저녁에 돈가스를 먹었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과음한 다음 날 해장국이 간절해서 우리는 월요일의 돈가스를 거부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이 주임은 우리 모두가 내린 결정을 상기시켰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주 월요일 점심으로 무조건 돈가스만 먹어야 한다면 그 바삭바삭함은 입안의 가시 같고 두툼함은 타이어 고무처럼 느껴질 것이다. 만일 불행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가시와 고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슬슬 월요일에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부 점심 약속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개탄하는 이 주임의 탄식을 들어야 했다. 민주주의는 월요일의 돈가스다.
일요일 오후 다섯 시 아내가 말한다. “저녁에 우리 돈가스 먹어요.” 아무래도 내일은 연차를 써야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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