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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격인 일측의 배상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 추명 외상은 지난 31일 참의원에서의 답변 중 제53해양환 사건에 관해서는 문제를 유야무야로 다루지 않고 재발방지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 방침에 의거, 침범여부의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측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구상서를 내주 중으로 전달하고 한국 정부에 손해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해양환 선원들은 3월31일 기자 회견에서 전관 수역을 침범한 사실이 없으나 한국측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송환하지 않겠다 해서 강제적으로 자인서를 썼다고 말했던 것이다.
일본측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일본정부와 해양환 선원이 짜고 전관수역 침범의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해양환 사건 발생의 책임을 한국측에 완전히 전가시키려는 것으로서 어불성설이라 볼 수 있다. 억류되었던 어부들이 귀국 직후에는 한국측의 취조는 시종 우호적이었다고 언명했다가, 이제 와서 강제 자인요구로 부득이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석방되어 돌아왔다 운운하는 것은 분명히 자가당착이다.
그들의 태도 표변 속에 우리는 일본 관헌의 음흉한 모략이 개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3월26일 목촌 일본대사는 석방을 요구키 위해 이 외무장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해양환이 한국 전관 수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처럼 현지 대사가 침범 사실을 시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외상이 침범 사실에 대한 시인을 뒤집어엎고 손해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우선 석방·송환부터 시켜놓고 다음 국력을 배경으로 고자세를 취해 한국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간사하고 악랄한 수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정부가 전관 수역을 침범한 일 어선을 국내법을 가지고 엄중히 다스리지 않고 관대 조처를 취한 것은 주로 정치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일본의 전중 의원 의장 선전씨 일행의 친선 방문에 대한 정치적 선물로서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 생긴 어업분규이기 때문에 관대히 그들을 석방해서 송환시켜 준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고려에서 관대한 취급을 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의 국내 여론 가운데는 이를 가리켜 저자세라고 비난하는 소리도 높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반성의 표시를 행동으로 나타내야 하고 앞으로 이런 일을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언질을 주는 일방, 해양환과 그 선원을 송환해 준데 대해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시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 외무당국이 송환된 어부들과 짜 가지고 침범 사실을 공적으로 부인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정부의 이런 비우호적 주장으로 인해 모처럼 이루어진 한·일 친선 「우호」가 깨어지게 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면서 일본측의 엄중한 반성을 촉구하고 싶다.
우리 정부 당국은 전관 수역에서의 범법 행위를 적발하고, 이를 추적하고, 나포하고 처벌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한국에 있다는 것을 다시 천명하고 앞으로 전관 수역을 침범하는 어선에 대해서는 엄중한 법적 처단을 가하겠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배상요구를 일축할 필요가 있다. 일 어선 침범에 대해 계속해서 관대 조치를 취하고 외교상 저자세를 취한다고 하면 전관 수역을 설정한 어업 협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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