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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획부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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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연말 M은행 노량진지점이 서울 상도동 고객에게 보낸 연하장이 거의 되돌아왔다. 고객의 대다수가 집을 팔고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상도동은 64년까지만 해도 도둑이 없고 이웃끼리 사이가 좋은 『평화로운 고장이었다』고 얼마전 집을 팔고 나온 W씨는 회고했다. 작년 가을 상도동의 등 너머 봉천동에 수재민 2만5천명을 집단 정착시킨 뒤부터 이곳은 교통이 혼잡해졌다. 정착이라고 해야 천막 하나 뿐, 당국은 우선 시내 중심지대나 대로변에서 보기 흉한 「슬럼」가를 없애 버렸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하루 벌이 꾼인 그들이 이 동떨어진 곳에서 생계를 이을 순 없었다. 그들 대다수는 이른 새벽부터 상도동 종점에서「버스」편으로 수십 리 떨어진 시내의 옛 일터를 찾아 나서야 했다.
결국 이들 집단정착은 「슬럼」가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 「슬럼」가를 다른 곳에 옮겨 도시 교통난을 가중케 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당국의 무계획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은 비단 상도동에만 그치지 않는 것. 우리의 도시 어느 곳을 가든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도로의 선을 그어라, 그리고 그 선 안에는 집을 못 짓게 해라』동경 대진재 때 동경시정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비아드」박사의 첫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동경시는 이 현명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해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도시 계획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도 천재일우의 기회는 있었다. 해방후 막대한 귀속재산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를 설계할 수 있었고 건물의 4분의1이 불타 버렸던 6·25 이후 또 한번 「꿈의 도시」건설이 가능했었다.
당시 대통령 이 박사도 수복 후 길을 크게 넓히고 서울을 근대도시로 말들 포부가 있었노라고 장관을 지낸 김모씨는 회상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그 기회는 선용되지 못했다.
해방 후 국유가 되었던 광대한 귀속토지는 연고권이란 명분으로 그야말로 「쓰레기 값」에 거의 팔아버렸고 서울의 경우 녹번동이나 불광동·상도동 일대의 교통용지는 물론 시유지도 같은 이름으로 깡그리 팔아버렸다. 6·25 후에도 그나마 남은 땅을 또 같은 구실로 팔았다.
지난 연말 노폭을 넓힌 을지로 입구 K상회 주변은 6·25후 헐값에 불하했던 곳, 그 후 서울시 당국은 15년도 못 되어 불하대금의 수백 배의 금액으로 되돌려 샀다. 『이것이 세금을 낭비하는 행정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인근 복덕방 김 노인은 분노한다. 서울시의 「도시계획백서」도 귀속재산의 무작정 불하를 후회하면서 『위정자가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이 올발랐다면』이러한 실패는 없었을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미국「로스앤젤레스」에서 57년 전에 열린 세계도시문제회의는 『시유지는 절대로 팔아서는 안되며 시가 살 수 있는 땅은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우리의 관리들은 작년에도 똑같은 구실을 붙여 시유지 수만평을 불하했다. 그것도 부정한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10년 뒤다 20년 뒤다하는 이른바 「청사진」을 내어놓는다.
기본자료도 정확한 통계숫자도 없이 실현시킬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숫자를 나열해 가면서.
올해도 서울시는 5백 50만원의 예산으로 대서울의 「마스터·플랜」(기본계획)을 짠다고 한다. 과연 어떤 「플랜」이 시민의 눈을 또 한번 둥그렇게 할까. <박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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