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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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8일 민주통합당의 새 원내 사령탑이 된 박기춘 원내대표 앞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과제가 놓여 있다. 그의 임기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인 내년 5월까지지만, 그의 역할은 어느 전임자들보다 더 중요하다.

 당장 대선 패배로 혼미에 빠진 당 분위기를 추스르는 일이 급하다. 민주당은 질래야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연거푸 졌다. 그러고도 진지하게 책임지거나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지난 4·11 총선 직후 패인을 분석하고 책임을 고루 나눠 질 기회가 있었는데도 시간만 흘려 보냈다. 대신 대선 국면에선 후보 단일화에 몰두했지 국민들의 열망에 대해선 깊은 성찰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선 패배 후 민주당에선 친노·주류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고 있다. 어제 의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계파색이 비교적 엷은 그를 뽑은 데에도 그 같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가 전임자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측근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2차 투표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의원들의 결정이니 당 차원에선 일단 힘을 실어주는 게 순리다.

 이를 의식한 듯 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민주당을 “뼛속까지 바꾸겠다”고 말했다. “눈앞의 이익을 놓고 추한 싸움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철저한 반성과 처절한 혁신을 예고한 셈이다. 이는 곧 계파 체질의 청산, 당내 기득권 구조의 타파를 의미한다. 민주당 내 특정 계파의 그악스러운 권력욕과 호전성은 대선에서 보수층의 거부감을 증폭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박 원내대표가 중점을 두려는 당내 혁신은 이에 대한 근본적 쇄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사람 몇몇 바꾸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창당 수준의 혁신 없이는 이뤄내기 어렵다. 내년 초 따로 선출할 비상대책위원장과 호흡을 맞춰 최고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 할 일이다.

 또 이는 문재인 민주당 전 대선 후보에게 48%의 지지를 몰아준 유권자들에 대한 보답이자 예의이기도 하다. 민주당 지지층은 지금 대선 패배로 허탈감에 빠져 있다. 민주당이 이를 보상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1야당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행정부와 국회를 동시에 장악한 새누리당에 맞서 권력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할 입장이다.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자칫 과반의 독선과 오만에 빠질 경우 이를 현실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은 민주당뿐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집권여당과 적극 협조하기도 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는 겹치는 게 많다. 복지 확대나 경제민주화 정책이 특히 그렇다. 비슷한 정책이라면 누가 주도하든 관계없이 국민을 위해 과감히 여야가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다.

 당장 박 원내대표는 여당과 함께 새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대선 직전 여야가 포퓰리즘으로 내질렀던 택시법을 강행 처리할지, 명분 있는 ‘출구전략’을 구사할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초대 총리 인준, 국무위원 인사청문, 정치개혁·경제민주화 등과 관련한 법안 처리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편향적인 이념색과 계파 체질을 벗고 국민들에게 유연한 정책정당으로서 수권태세를 보여주는 게 박 원내대표의 책무다. 민주당 지지자뿐 아니라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그의 리더십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