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건축가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집짓기’ ③ 대전 하기동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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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정 소장이 설계한 대전 유성구 하기동 이창용씨의 주택. 낡은 느낌이 나는 고벽돌로 마감한 1층에 흰색 상자 같은 2층이 경쾌하게 얹혔다. 2층에도 외부로 통하는 발코니를 둬,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했다. [사진작가 신경섭]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입에 달고 산 말이 “하지 마”였다. 아랫집 시끄러우니 “뛰지 마”, 엘리베이터 위험하니 “혼자 나가지 마” 등등. 세 아이를 둔 이재동(39)·최명숙(36) 부부와 두 아이를 키우는 이창용(38)·정광숙(35) 부부는 아이들 윽박지르기로 채워지는 일상에 한계를 느꼈다.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22일 젊은 두 부부의 새 보금자리가 들어선 대전광역시 유성구 하기동의 단독주택 단지를 찾았다. 전날 내린 눈이 소복소복 쌓인 집 앞 마당에서 아이들이 눈을 뭉치며 놀고 있다.

정기정 건축가

 두 가족은 10월 말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 같은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알게 됐고, 두 아빠 모두 인근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 금세 가까워졌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비슷한 고민이 있더라고요.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함께 땅을 보러 다녔죠. 가까이 살며 아이들끼리 어울려 자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이재동)

 처음에는 한 채의 집에 독립된 두 가구가 사는 ‘땅콩집’도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약 50m 정도 떨어진 필지를 각각 구입했다. 대신 같은 건축가와 시공사에 설계 및 공사를 맡겼다. 두 집을 동시에 지으면서 중장비 대여비용이나 인건비 등이 줄어 전체 공사비용을 약 10% 정도 절감할 수 있었다.

 건축사사무소 유오에스의 정기정(43) 소장이 설계한 두 집은 공통적으로 1층은 고벽돌로, 2층은 흰 벽으로 마감한 깔끔한 외관이다. 하지만 2층이 올라선 모양이나 내부 구조 등은 많이 다르다.

 먼저 이재동씨 집을 둘러봤다. 8살·6살·3살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부가 건축가에게 요구한 것은 거실과 주방 공간을 분리해 줄 것,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연면적 138m²(약 42평)인 집의 1층에는 거실과 부엌 외에 부부의 방과 서재가 있고, 2층에는 아이들의 침실과 책방이 자리잡았다. 볼록한 지붕 밑 공간을 활용한 다락방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채워진 놀이터다. 땅값을 제외한 전체 공사비는 약 2억 5000만원 가량 들었다.

이창용씨 집의 1층 거실. 확 트인 느낌이 들도록 기역자의 큰 창을 냈다.

 정 소장은 모든 방에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냈다. 누구나 쉽게 외부와 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주택에 산다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혜택을 갖는 것이죠. 단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게 아니라,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이창용씨 집은 연면적 112m²(약 34평)다. 공사비는 1억 7500만원 정도 들었다. 6살과 20개월 된 두 아이가 있는 부부는 1층에는 가족을 위한 넓은 거실과 주방, 아이방을 두고 2층은 부부의 침실과 서재 등의 공간으로 간략하게 꾸몄다.

 “흔히 단독주택은 나이 들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짓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조금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손이 많이 가는 주택생활을 젊었을 때 해 보고, 나이 들면 편리한 아파트로 옮기자고 했죠.”(이창용)

 주택에 살기 시작한 후 두 부부의 생활은 달라졌다. 떨어지는 낙엽과 내리는 눈 등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도 풍부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교육방식도 변하고 있다. 두 집 아이들은 자유롭게 왕래하며 서로의 마당에서 뒹군다. 이재동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혼자 밖에 나가도 불안하지 않아 좋다. 아이들에게 ‘뛰지 마’ ‘떠들지 마’ 대신, ‘나가서 놀아’라는 말을 부쩍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은 그렇게 우리의 생활, 나아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었다.

◆건축가 정기정=1969년생.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졸업. 건축사사무소 유오에스 대표. 경기 광주시 푸른 숲 마을, 파주 자유학교, 동대문구수련원 등을 설계.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제3회 젊은건축가상, 2012년 농어촌건축대전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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