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자칭 「구세주」|「응크루머」·「가나」 행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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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응크루머」 대통령이 월남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중공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가나」의 군부 「쿠데타」는 완강히 반항하던 대통령 친위대가 투강해 옴으로써 성공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로써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60년이래 28건의 정변이 있었으며 지난 4개월간 여섯번째로 「쿠데타」가 성공한 셈이며 이러한 군부의 「쿠데타」 기운은 앞으로 정치·경제면에서 불안정한 이 대륙에 더욱 퍼져 나갈 가능성이 있다.
1백13년간의 영국 통치로부터 벗어나 1957년에 독립한 「기니」만 연안의 소국 「가나」는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중에서 제일 먼저 독립을 얻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 제국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나라로 여겨져 왔다.
국민 소득도 1백50 「달러」로서 「아프리카」에서는 상위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1962년 야심에 가득찬 「응크루머」 대통령이 자기를 종신 대통령으로 만드는 개헌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을 때 이번 「쿠데타」의 씨는 이미 뿌려졌다고 보겠다.
그동안 네번에 결친 암살 기도를 당한 그는 항상 자기 생명에 위험을 느껴 왔으며 지난 몇달 동안에는 거의 공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칭 「구세주」인 이 독재자는 국내에서 겪은 이와 같은 인기의 실추를 만회하려는 듯 대외적으로 힘에 겨운 활동을 해왔다. 「로디지아」가 일방적 독립을 선언했을 때 영국이 이에 무력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국과 단교하는데 선봉에 선 것이나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실각을 가져온 이번 월남 문제 중재 활동이 그것이다.
뜻하지 않았던 이번 「쿠데타」로 난처하게 된 것은 중공이다. 21발의 예포를 쏘고 수천명의 환영 군중을 동원하는 등 중공은 처음 각본대로 국가 원수에 대한 예를 다했지만 그것은 마치 허수아비에게 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날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내정에 간섭한다는 이유로 외교 사절단이 축출 당한 사건이 말해주듯이 중공은 최근 「아프리카」에서 여러번 외교적 실패를 맛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으로서는 이번 그의 방문이 여러 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쿠데타」 성공이 확실시되고 있으니 이 방문이 띠고 있던 의의와 함께 또 하나의 독재자가 사라져 가게 되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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