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축과 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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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누나, 동조 바리콘은 이거고, 저건 진공관이야』동생이「케이스」없는 전축을 만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요술같지만 아무것도 아니야』동생은 신이 나는 모양이다. 부속품을 사들이느라 부산한 동생에게 『미리부터 큰소리만 치지마』하며 구경만 했더니 어느새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전축을 거뜬히 만들어 놓았다.
내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공부에는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대학시절. 과외공부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서 깡패를 보면 내 신변도 걱정됐지만 그보다도 내 동생이 훗날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랬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라디오 제작 회도집」이니 하는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내 책장 옆에다 조그만 실험실을 차려놓고 「연구소」라 써 붙이고는 알 수 없는 실험을 하곤 했다.
그 애가 「에디슨」이 되길 바라는건 아니다. 다만 땀흘려 일하고 연구하는 기쁨 속에서 올바르게 살아나가길 바랄 뿐이다. 시내로 나갔던 길에 책점에 들려 「전자기술」책을 샀다. 현미경 속에 비친 미생물을 보고 신의 존재를 느낀 과학자처럼 그 애도 신기한 전기의 힘 속에서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주었으면 좋겠다. (강영자·서울 마포구 아현동3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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