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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 아이들에게 체육을 돌려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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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최태석
한국체대 교수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 운동장에서 시작됐다.”

 1815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를 워털루에서 격파한 아서 웰링턴 장군이 한 말이다. 그가 나온 이튼 칼리지는 영국을 이끌 엘리트를 키우기 위해 설립됐다. 그리고 체육 교육을 가장 우선에 뒀다. 영국을 이끌 지도자들은 체육을 통해 페어플레이 정신과 공동체의식, 준법정신, 약자에 대한 배려, 책임감 등을 배웠다.

 그만큼 교육에서 체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의 학교체육은 무너졌다. 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이 흔들리며, 그 위에 쌓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도 사상누각과 같은 모양새가 됐다. 앞으로 5년, 한국을 이끌 새 대통령은 체육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교체육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입시 위주로 편중된 교육 현실은 학교를 삭막하게 만들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학생은 급격히 줄었고, 그 시간에 시험 문제를 푸는 학생만 늘었다. 성장기의 넘치는 에너지를 건전하게 분출할 곳을 잃었고, 학교폭력과 왕따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조사한 결과 어린이·청소년 비만인구가 12%로 나타났다.

 새 대통령은 체육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학교 체육수업 시수를 늘리고, 전문 스포츠 강사를 배치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 체육시설 부족으로 학생들이 체육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

 이렇게 확보한 체육시설로 생활체육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덴마크는 인구 500명당 한 개 이상의 다목적 스포츠센터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도 ‘골든 플랜’이라는 생활체육정책을 실시해 체육을 국민 생활에 뿌리박게 했다. 한국도 스포츠 바우처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도 체육을 즐길 수 있게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장애인과 다문화가정도 혜택을 받아야 한다. 생활체육은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국가가 행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정책이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도 ‘약한 미국인들’이라는 기고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힘은 크다. 그러나 체육을 통한 복지사회 건설은 민주주의보다 더 강하고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체육의 저변을 넓히면 엘리트체육도 발전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재능을 썩히는 선수가 나와선 안 된다. 저소득층 학생선수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다. 전문 체육인들이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체육 정책을 짜는 부서에 체육 전공자들이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최태석 한국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