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권 조기사용교섭과 저자세 외교를 규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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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 경제기획원장관은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지난번 좌등 일본수상과 이 외무장관과의 회담 때에 좌등 수상이 청구권자금의 조기사용을 승낙했다고 말한 데 대해, 일본 외무성 당국은 이를 전적으로 부인한 일이 있다. 좋게 말해서 받을 돈을 앞 당겨 받아 더욱 유효하게 사용하는 것이 왜 나쁘냐는 이론인 듯 하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유치하고 자가당착에 빠지는 옹졸한 생각이다.
불과 수개월 전에 10년 간에 나누어서 받겠다고 감지덕지(?) 조인해 놓고, 그것을 4∼5년 내로 앞당겨 받아낸다니 누가 무슨 재주로.
청구권 협정중 단서가 있지 않느냐고 우기지만 조항을 우려먹으려면 상대방에게 많은 흥정과 양보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즉 저자세가 강요된다는 말이다.
청구권 상환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싶으면 협정 자체를 개정하여야하는데 그것은 현재의 정황으로 보아 좀처럼 될 것 같지도 않다.
또 청구권은 일종의 국가의 권리인데, 국가권리는 그 당시의 행정부가 관리한다고 보면, 8∼9년 후에 집권할 후계 행정부가 관리할 것으로 예정되는 상환청구권을 가로채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정부는 차관유치를 근대화에의 첩경이라고만 속단한다. 하다 못해 75% 완제품 「코로나」 승용차를 도입하면서도 경제의 자립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전문가들은 청구권조의 자재도입이 일본사양산업의 청소작업으로 이용되기 쉽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청구권조 구매업무를 에워싼 행정 관료의 대규모 부패를 규탄하고도 있는 것이다.

<서울·기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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