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후 매진" 홈쇼핑 '대박' 방송시간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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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에 6곳뿐인 홈쇼핑 업체 가운데 N·G·H·H홈쇼핑 등 4곳에서 납품 비리가 적발됐다. 이 업체들은 매출액의 30~40%에 달하는 입점수수료를 받으면서도 관행적으로 1~4%의 불법 리베이트를 더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는 고스란히 홈쇼핑에서 제품을 산 소비자 몫으로 돌아갔다.

 서울 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박근범)는 홈쇼핑 납품업체들로부터 청탁을 받고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H홈쇼핑 상품기획자(MD) 박모(37)씨 등 전·현직 업체 관계자 7명을 17일 재판에 넘겼다.

이들에게 뒷돈을 건넨 납품업체 및 벤더업체(납품중개업체) 관계자 10명도 함께 기소했다. 1995년 TV홈쇼핑이 출범한 이래 관행으로 굳어진 납품 비리가 검찰에 대규모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방송 론칭과 황금시간대 편성 등 각종 이권을 두고 금품 로비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홈쇼핑 납품을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뒷돈이 오갔다는 것이다. 어떤 상품을 어느 시간대에 방영할지 등 실무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MD가 납품업체들의 주된 로비 대상이었다. 납품업체 전체 매출액의 1~4%에 달하는 월 200만~600만원이 매달 ‘수수료’ 명목으로 MD에게 흘러간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중 일부는 편성팀장·본부장 등 윗선에 단계적으로 전달됐다.

 로비에는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됐다. 존재하지 않는 컨설팅이나 방송 모니터링을 했다는 명목을 가짜로 만들어 형식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흔한 수법이었다. 돈을 받을 때는 동생의 친구나 장인의 회사 직원 등 추적이 쉽지 않은 타인 명의의 계좌를 사용했다. 홈쇼핑 상품 판매에 자주 등장하는 사은품 업체를 이용하기도 했다.

납품업체가 사은품 가격을 부풀려 송금한 뒤 남는 차액을 홈쇼핑 관계자가 가져가는 수법이었다. 이외에도 벤츠·BMW 등 고급 외제차량 리스비용을 대납해 주거나 납품업체의 내부 정보를 제공받아 주식거래에 이용한 사례도 적발됐다. 납품업체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빌려주고 연이율 60%의 폭리를 취한 경우도 있었다. 한마디로 ‘비리의 복마전’이었다.

 검찰은 이번에 적발되지 않은 나머지 2개 업체에 대해서도 관련 혐의가 나오면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과 소비자 이익을 목적으로 도입된 홈쇼핑 사업이 고질적인 도덕 불감증에 빠졌다는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리베이트 비용이 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최종 소비자가 손해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납품업체 수사 과정에서 홈쇼핑 비리와 별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청 공무원들에게도 단속 무마 등 명목으로 뒷돈이 흘러간 정황을 확인했다. 전직 홈쇼핑 MD의 아버지인 식약청 공무원 전모(51)씨 등 3명이 수천만~1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농협 직원 이모(37)씨 등 3명도 식품 납품 과정에서 판매대금을 가로챈 혐의(업무상 횡령)로 기소됐다. 검찰은 홈쇼핑 관계자들과 식약청 공무원 등이 받아 챙긴 9억2000여만원을 환수 조치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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