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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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천성이 음식에는 까다로운 편이다, 중학시절부터 줄곧 하숙생활을 하는 동안 하숙집 음식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 고충은 견디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나이가 30이 넘었으니 주의에서는 혼기를 놓친다고 서두르기도 하지만 나로선 지긋지긋한 하숙생활을 청산할 양으로 지난봄 손쉽게 식을 치렀다. 아내도 처녀시절부터 직장을 가진 터라 어린애가 있을 때 까지란 단서를 붙이고, 부부가 맞벌이에 나섰다. 여름철에는 해가 늦게 지며 6시에 퇴근을 하고 저녁을 해먹어도 해가 산마루에 걸리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두워진다.
주인집에는 저녁상을 물리고, TV앞에 식구가 모여 앉아있다. 요즘 와서 아내는 회사 일이 바쁘다고 퇴근이 으례 나보다 1시간 정도는 늦다.
날은 어두워오는데 아내가 와서 밥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서투른 솜씨로 쌀을 씻어 밥을 앉힌다. 문간방 마루 밑 연탄불 위에 밥솥을 얹어야하는 형편이니 곧장 머리를 마루에 받기도 일쑤이지만 밥이 탄 냄새가 나야만 밥이 된 줄 아니, 내가 하는 일이지만 쓴 웃음을 금할 수 없다.
뒤늦게 돌아온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찌개도 만들어 마주 앉으면 돌을 일지 않은 밥이라 번갈아 돌을 씹는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미안해서 내 눈치만 살핀다. 그럴 때는 난 여느 때와는 달리「돌」도 많이 깨물면 이(치)라도 튼튼해지겠지』하면서 가벼이 넘긴다. 결혼을 하면 편할 줄 알았더니 나이 30에 결혼 그날부터 저녁 짓는 새로운 과업(?)이 하나 더 생겼으니 나에게는「편안함」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모양이다. <김영기·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3의57(안영진씨 댁)<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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