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율 50% 넘었는데 집값은 왜 안 오를까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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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 전셋값을 매매가격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해 비율화 한 건데요, 흔히 전세가율이라고 합니다. 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외국 사전에도 없습니다.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흔한 게 아닌 데다 전세가율이라는 게 사실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자주 쓰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편의상 전세가율이라는 말을 만들어 쓰는 겁니다.

그런데 주택시장에서는 전세가율에 대한 ‘상식’이 있습니다. 전세가율이 50%를 넘으면 매수세 증가로 이어져 집값이 뛴다는 겁니다.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로 도출한 결과이므로 신빙성도 꽤 높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새 집값은 내리고 전셋값이 뛰자 각종 연구소 등지에서 이 상식을 토대로 집값이 반등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비해 50% 이상이 되면 차라리 사고 말겠다는 심리가 강해져 매수세가 늘고, 이로 인해 집값이 뛴다는 겁니다.

전세가율 50% 넘었는데 집값은 하락

하지만 요즘 이 상식이 깨졌습니다. 국민은행 부동산조사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달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평균 63%를 기록했습니다. 2003 6 63.4% 이후 최고치라고 합니다.서울은 평균 54.5% 2003 4 55% 이후 가장 높다고 합니다. 경기도 역시 58%로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최고치라고 합니다. 지방은 6대 광역시가 67.8%, 기타 지방이 69.6%입니다.서울·수도권도 50% 훌쩍 넘은 겁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집값은 여전히 하락세입니다. 전세가율이 50%에 육박할 때 여러 연구소·기관은 매수세가 증가해 집값이 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그러자 지금은 “60%를 넘으면…”이라고 말을 바꿉니다. 어제죠, 12일에도 한 금융기관이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자료를 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자세히 보니 50%가 아니라 60%였을 때 집값이 올랐다는 겁니다.

전세가율 60%가 심리적 저항선?

그러면서 60%를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규정 짓습니다. 이 상식이 틀렸고, 연구기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전세가율 50%를 넘었을 때 매수세가 늘며 집값이 오른 경우도 있었고, 60%를 넘었을 때 집값이 오른 경우도 분명 있었습니다.하지만 전세가율에 대한 오해가 문제입니다. 예컨대 전세가율이 60%라면 매매가가 1억원일 때 전셋값이 6000만원이라는 얘기죠. 그럼 이 수요자가 매수로 전환하려면 전셋값 외에 40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합니다.과거에는 이 4000만원을 어떻게 구했나요. 바로 은행이 빌려준 겁니다. 금융권이 앞다퉈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전셋값에 대출을 더해 집을 살 수 있었던 겁니다.집값이 오름세였으므로 얼마간의 대출 이자를 내고도 남는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대출을 너무 많이 받으면 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우니 대출금액이 집값의 50% 정도면 괜찮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전세가율이 50% 정도라면 차라리 사는 게 낫다는 심리가 확산됐고, 실제로 그랬던 겁니다.

대출 안되면 아무 의미 없어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집 구입은커녕 생활 자금을 쓰기 위한 소액 대출도 힘든 실정입니다. 가계부채는 이미 폭발 직전까지 갔습니다. 정부까지 나서서 가계부채 축소 방안을 찾느라 고심할 정도입니다.게다가 집값은 오를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이라도 있다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집을 사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닌 겁니다. 그러니 전세가율이 60%에 이르면 뭐합니까. 집값의 40%를 마련할 방법이 없는데요.전세가율 50%, 60%, 70%는 매수 심리 등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전세가율이 90%가 된다고 해도 나머지 10%의 비용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 사람은 절대 매수세로 돌아설 수 없습니다.전세가율은 그저 매매가 대비 전세값 비율일 뿐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택 구매력이나 매수 심리 지표 등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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